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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중심사회 남한, 단점이며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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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중심사회 남한, 단점이며 장점”
  • 이번영 시민기자
  • 승인 2020.05.10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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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기농업인 새터민 김영남씨

북한에서 탈출해 홍동면 문당리에 살고있는 김영남(32) 씨는 마을에서 인기가 높다. 집도 사고 논·밭을 빌려 유기농업을 하며 청년회에 가입, 마을공동작업에도 빠짐없이 나와 가장 열심히 일하는 등 요즘 보기 드믄 청년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 국회의원 당선자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탈북주민 이미지가 손상받고 있는 때 이렇게 잘하는 청년을 소개해 달라는 주민들의 제안을 받아 농장으로 찾아가 만났다.

김영남 씨는 대한민국에 들어온지는 12년이 됐지만 홍성에 정착한 지는 3년째다. 그런데 올해 양지바른 언덕 400평 텃밭이 딸린건평 30평 주택을 샀다. 논 900평 한 구간과 비닐하우스 2동 400평 밭에 유기농 감자와붉은색 양배추를 재배하고 있다.

김영남 씨는 한반도의 최북단 지역으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인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 북으로 두만강을 건너면 중국 조선족 자치주가 나온다. 산악지대인 함경북도에서 보기 드물게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온성군 농가에서 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누님은 중국으로 넘어간 뒤 행방불명이고 열세살 때 어머니와 이모가 탈북, 혼자 남아 꽃제비, 남의 집 양자 등으로 고생하다 중국을 거쳐 대한민국에 들어오게 됐다.

영남씨는 남쪽 라디오와 드라마를 비밀리에 듣고 보면서 남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 건너가 잠시 조선족 학교에 다닐땐 남한 출신 강사로부터 남쪽 이야기도 들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기업 회장들 집을 보며 남쪽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사는가 생각돼 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북쪽에서도 특히 중국 국경지대는 많은 사람들이 남한의 실상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영남 씨는 열일곱 살에 탈북, 중국에 머물다 열아홉살 되던 2008년 한국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한 해 먼저 와서 장사하는 강원도 춘천으로 찾아가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2010년 야간에 트럭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3년 동안 병원생활을 했다.

25세에 탈북자 교육기관인 새터민학교에 들어가 10개월 동안 공부해 검정고시를 패스, 천안 연암대학교 축산과에 들어갔다. 정부는 탈북자들의 대학교 8학기 과정 등록금을 지원한다. 2학년 때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주형로 유기농장으로 20일간의 현장실습을 나왔다. 그때 주형로 씨를 알게 되고 유기농업, 순환농업을 실무적으로 접하게 됐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김영남 씨에 대해 일 잘하는 청년이라고 칭찬하면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순진하고 단순해서 사기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수천만 원을 까먹는 등 실패도 여러 번 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남의 말만 듣고 토종 흑돼지를 자연 방사로 기르다가 돈만 날리기도 했다. 40여 마리를 20만원에 사다 6개월 기른 뒤 10만 원씩 팔아야 했다. 실패를 거듭할 무렵 주형로씨의 권유로 홍성으로 왔다.

영남 씨는 홍성에 정착한 이유를 주형로 씨 멘토가 중요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차별없는 따뜻한 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에서는 옆집 앞에 쌓인 눈을 치워 주려고 해도 비키라며 상대도 안하는 이유가 북한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홍성에서는 가을에 김장을 못 하니까 앞, 뒷집에서 서로 갖다주는 등 인정과 친절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에서 농약과 비료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유기농업을 했다고 한다. 그는 농사에 대해 이론은 모르지만 실무는 자신 있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특히 삽질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그는 삼성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3년 안에 결혼하고 춘천에서 장사하는 모친을 모셔와 홍성에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남한에 살면서 느끼는 대표적인 단점과 장점 한 가지씩만 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게 한 가지로 ‘자본주의’였다.

“여기서는 모든 중심이 돈이 잖아요? 그게 힘들었습니다. 처음 와서 3년 정도는 고향에 다시 가고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한 살이 장점요? 자유죠.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는 것이죠. 북에서는 그게 한계가 있거든요.”

그의 가장 큰 소원은 조국통일이다. 남북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바라는 꿈 아니겠냐는 물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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