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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현 자 갈산중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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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현 자 갈산중 교사·시인
  • 홍성신문
  • 승인 2020.01.1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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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걱정마라, 너희들은 이미 꽃이다

드디어 오늘, 열일곱 마리의 작은 새들이 정들었던 중학교 둥지를 날아갔다. 3년 전 바로 이 강당에서 입학식 때의 녀석들은 코흘리개는 막 벗어났지만, 의젓하게 자리잡고 앉은 3학년 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천방지축이었다.

신입생을 훈계하는 것보다는 수시로 3학년 학생을 붙들고, ‘너희들이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 다오.’ 입술 닳도록 부탁하였다. 신입생들에게는 훌륭한 선배들을 잘 따르라 용기를 주면서 지나온 3년, 아이들은 놀랄 만큼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였다. 사소한 급식예절부터 스포츠동아리, 현악연주, 보컬밴드, 체육관과 운동장 사용법, 각종 경기 규칙, 민주시민 교육의 場인 ‘소통의 날’ 활동까지, 아이들은 누나와 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곁눈질하며 영특하게 어깨 너머로 배웠다.

면 소재지 학교인지라 학생 수가 적은 탓에 하나라도 더 넓은 세상을 체험시켜주고자, 교사들은 참으로 여러 군데를 지치도록 이끌고 다녔다. 돌아보면 그 때는 힘들었지만, 오늘 졸업식장의 한켠에서 성큼 자란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대견하기 그지없다. 특히 중학교 2학년, 소위 ‘중2병’이라는 시기도 큰 사고 없이 낙오자 없이 지났다. 그러기까지 교사들은 중2 학생들을 끊임없이 이해하고 도와주고 기다려주었다.

사실 중2 학령의 아이들은 심신이 참말 바쁘다. 의지와 관계없이 막 시작된 사춘기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왕성한 발달 기간이다. 신체적으로 몸무게와 키를 중심으로 한 성장 급등 현상은, 각 신체 기관이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날이 우스꽝스러워지는 외모에 대하여 상당 시간을 말 못할 고민에 빠져 있기도 한다. 공부가 급한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심한 일인 것 같지만, 외모를 중시하는 요즘 아이들에겐 어쩌면 공부보다 더 큰 관심거리요, 걱정과 불안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성장의 개인차에 대해 일일이 인지시키면서, 나름대로의 개성과 자아 존중감을갖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정서・정신적 발달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춘기에 이르러 감정행동을 관장하는 대뇌 번연계의 활성화로 사소한 일에도 느닷없이 물불을 못 가리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아이들이,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마치 시한폭탄, 착했던 내 아이에게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이상 증세,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중2병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의도한 바가 없는데, 이제 막 개설된 감정공장에서 기쁨, 슬픔, 분노, 놀람, 불쾌, 불안, 증오, 공포, 이상함, 열등감, 우월감, 흥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이 수시로 수십 번 수백 번 교차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래서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불안정하고, 변덕스런 감정 상태를 보일 수밖에 없고,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것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 역할을 하는 전두엽이 뒤늦게 서서히 발달하면서, 중2의 태풍은 지나는 것이니, 아프면서 크는 그들의 성장 과정에 더 많은 격려를 보내야 한다.

중2라고 공부 걱정 없을까, 잘하는 학생이나 부진 학생이나 똑같이 큰 부담을 갖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그저 스마트폰이나 하면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 것 같아도, 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녀석 말 그대로 ‘고민이 하도 커서 도피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두드린다’는 말도 때로는 진지하게 믿어줘야 한다. 공부는 당사자인 아이가 하는 것이지만, 사실 공부의 습관을 들이는 상당 기간은 부모들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볼 때, 공부 문제를 단순히 아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에게 ‘해라! 해라!’ 윽박지르거나 강요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된다. 그 힘든 공부를 찬찬히 곁에서 지켜봐주며 격려하고, 아이의 적성과 특기를 발견해서, 자연스레 물길을 내듯 진로를 설정해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부모와 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마치 눈덩이를 굴리듯, 초기 공부 습관의 정착 단계가 어렵지, 꾸준하게 공부 습관이 형성되면 아이들은 큰 어려움 없이, 학업(교과공부, 독서 등)에 매진하고, 학업에 매진하다보면 학업이 주인 학교생활도 지루하지 않게 잘 할 수가 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아이들도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 한다! 어느 학생에게 물어도 잘 하고 싶단다! 이런 아이들에게 ‘최고’가 아니어도 끝까지 ‘완주’하는 근성, ‘최선’을 다할 때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칭찬하고 지지해줘서 공부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자.

막 날아간 작은 새들은 아마 처음엔 신이 나겠지만, 머잖아 중학교 때보다는 더 너른 세상에서, 좀 더 거센 바람을 만날 것이고, 서툰 날개짓으로 헤맬 것이다. 실수도 많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들의 언니요, 형이요, 부모가 되어 너른 품으로 안아주자. 공부가 외우고 숫자만 셈하는 것이 다가 아니니, 미래 사회의 주요 덕목인 정직한 마음, 성실한 자세, 배려, 나눔, 공감, 소통능력… 무엇보다도 책임감 있는 행동 등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자. 현대 사회 개성이 강한 사람들 끼리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인간다운 품성을 갖출 수 있도록 어른들부터 자성하자.

문득, 얼마 전 수업 시간이 떠오른다. 바느질 과제를 열심히 잘하면서도 연신 “저 잘했나요? A예요? B예요?” 불안한 얼굴로 성적을 묻는 학생이 있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웃으며 학생에게 말했다. “잘 했네! 참 잘했어요! 그리고, 못하면 좀 어때요? 봐요, 점점 나아지고 있잖아요?” 교단에 올라서서 한창 과제 수행에 바쁜 아이들을 멈춰 세우고 눈을 맞췄다. “얘들아, 걱정마라,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란다, 너희들은 이미 꽃이야. 이담에 어딘가에서 모두 예쁜 꽃을 피울 거야” 라고. 다만 우리 어른들은 이 사회에서 저 아이들이 맘껏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먼 훗날 제 나름의 고운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도록 부지런히 화단을 가꿔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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