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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홍북읍 신정리 상유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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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홍북읍 신정리 상유정마을
  • 홍성신문
  • 승인 2020.01.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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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톺아보기-소가 사는 집, 외양간

홍북읍 신정리 상유정마을은 홍북읍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예산군 응봉면 주령리, 서쪽으로는 홍북읍 신정리 하유정, 남쪽으로는 예산군 응봉면 계정리, 북쪽으로는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와 경계를 이룬다.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상유정의 유정(酉井)은 신정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예산군 응봉면 계정리와 홍성군 흥북면 노은리의 경계에 있는 닭재산 밑을 달기물이라 했는데, 예산군 응봉면에 있는 달기물 또는 계정의 이름을 피해 그 뜻만 따서 닭 유(酉) 자를 써서 유정이라고 했다.

상유정마을은 총 3개 반으로 구성되는데 마을회관이 있는 초입에서부터 3반(아랫뜸), 2반(가운데뜸), 1반(윗뜸)으로 나눠진다. 1988년 당시 전체가구는 89가구였고, 2000년대 초반에는 60여 가구였으나 2009년경 장례가 잇따르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현재는 40가구에 이른다. 전체인구는 59명이며 이 중 남자는 23명, 여자는 36명이다. 귀촌가구는 2가구, 혼자 사는 가구는 22가구다. 상유정마을 남성 최고령자는 1931년생 임현순 씨이며, 여성 최고령자는 1921년생 박화월 씨다.

임오순 씨 집 앞에 있는 외양간으로 소 9마리를 키우고 있다.
임오순 씨 집 앞에 있는 외양간으로 소 9마리를 키우고 있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주민 대부분이 담배농사와 삼베길쌈을 했으나 현재는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있다. 전체 농지면적은 논이 330,580㎡이며, 밭은 234,000㎡다. 이밖에도 100두 미만 축사가 3가구이며, 소 5~6마리를 키우고 있는 가구는 5가구다. 담배농사를 짓는 가구는 임응순 씨 1가구이며, 딸기농사를 짓는 가구는 이병로 씨 1가구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옥에 외양간을 두어 일하는 소를 가족처럼 키웠다. 지금은 모두 기계화가 되어 일하는 소를 보기 어렵다. 이와 더불어 외양간 풍경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상유정마을에는 집집마다 1마리에서 많게는 200마리까지 소를 키운다. 10마리 내외의 소를 키우는데 굳이 큰 축사는 필요 없다. 당연히 집에 작은 외양간을 만들었다. 외양간 모습도 예전 모습은 아니다. 벽돌로 쌓아올린 현대식 외양간이다. 최정희 씨 집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최정희 씨 주택은 시할머니부터 거주했던 집이니 족히 150여 년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우측에 외양간과 아궁이가 자리한다. 그을음으로 인해 천정과 벽이 모두 검다. 예전에는 외양간에 일하는 소 1마리만을 키웠다.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먹고, 자고, 일했던 소다. 그저 한낱 가축이 아닌 사람과도 같은 식구였다. 최정희 씨 집에는 소를 끌던 쟁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최 씨는 “우리 영감(故 임원기)이 열다섯 살 때부터 쟁기질을 했다고 해. 영감이 소데리고 일하러 가면 머리에 새참이랑 소밥을 이고, 등에 애를 업고 그러고 다녔네”라고 회고한다. 그만큼 사람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가 먹을 밥을 함께 준비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임대순 씨는 “논갈이나 밭갈이할 때 소가 사람과 똑같이 일했다. 일을 많이 한 소는 발톱이 다 닳아 걷지 못할 정도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식구처럼 일하던 소는 고삐를 안 잡아도 알아서 가고, 알아서 온다. 자식 같은 소였다”고 설명한다. 소의 수명은 대략 20년이라고 한다. 집에서 일하던 소는 늙고 병이 들었다고 해서 절대 팔거나 죽이지 않는다. 사람처럼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자식처럼 돌보다가 땅에 묻어줬다.

신영훈이 쓴 ‘한국의 살림집’에 따르면 외양간을 서남부 지방에서는 ‘오양간’, 제주도에서는 ‘쇠막’ 또는 ‘쇠왕’이라고 하며, 강원도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마구간’이라고도 부른다. 경기도와 삼남 지방에서 규모가 작은 집일 경우, 외양간은 외채집을 제외하고는 사랑채 혹은 행랑채에 두는데, 대개 부엌 또는 불을 때는 아궁이와 가까운쪽에 둔다. 규모가 큰 집인 경우는 부속사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부속사란 일종의 바깥채로 여기에 잿간·돼지우리·헛간등을 함께 설치해 만든 간단한 구조물이다.

임대순, 권월순 씨 집에 위치한 외양간으로 구씨 부자가 살던 구옥을 매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구옥에는 2개의 외양간이 있다. 1개는 현재 비어 있고, 다른 1개의 외양간에는 소 2마리, 박화월 씨 댁 뒤편에 위치한 외양간에서 소 10마리를 키운다
임대순, 권월순 씨 집에 위치한 외양간으로 구씨 부자가 살던 구옥을 매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구옥에는 2개의 외양간이 있다. 1개는 현재 비어 있고, 다른 1개의 외양간에는 소 2마리, 박화월 씨 댁 뒤편에 위치한 외양간에서 소 10마리를 키운다

여물을 먹이는 구유는 부엌 쪽에 두어 부엌에서 먹이를 줄 수 있도록 하고, 여물도 직접 부엌에서 끓였다. 이는 겨울철 소의 시중을 들기 위해 주부가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배려다. 외양간 바닥은 부엌 바닥보다 낮게 만들어 소의 오물이 부엌 안으로 스며드는 일이 없도록 했다.

행랑채에 설치하는 경우에는 행랑채 중앙의 대문간 옆에 붙여서 배치한다. 외양간의 평면구조는 대개 두 면은 막히고, 한 면은 출입을 위한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짚 등으로 가렸으며, 다른 한 면은 개방해 이곳에 통나무로 만든 구유를 놓아 먹이를 줄 수 있게 했다. 외양간 바닥은 흙바닥이며, 이 위에 짚 등을 깔아놓는다. 이 짚을 두엄이라 하는데 더러워지면 거름이나 땔감으로 이용한다. 외양간의 한자를 보면 양간(養間)이라 쓴다. 새끼 양羊, 기를 양良으로이뤄졌다. 간間은 방(房), 방 넓이의 단위라는 뜻이다. 즉 양을 기르는 방이다. 말이나양, 소 등을 키우는 집이다. 이는 지금의 축사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집에서 기르는가축에게 ‘방’이라는 단어를 내어준 것이다. 그만큼 가축은 인간이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동물이었다.

외양간에서 나오는 소의 분비물은 짚을 섞어 퇴비로 사용했다. 소도 사람과 똑같이 아침, 점심, 저녁을 먹어야 한다. 지금은 거의 모든 축사에서 사료를 먹이지만 예전에는 가마솥에 소죽을 쑤어 먹였다. 당연히 아궁이와 가마솥이 외양간 바로 옆에 위치했다. 잘 마른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피운다. 가마솥에 짚과 건초, 콩깍지, 쌀겨 등을 넣어 소화가 되기 쉽게 푹 끓인다. 현재는 하루 2번 사료를 먹이고 소가 소화가 잘되는 것을 돕기 위해 틈틈이 짚을 먹인다.

속담에 ‘망우보뢰(亡牛補牢)’라는 말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이다. 이미 어떤 일을 실패(失敗)한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음을 말한다. 소중한 것은 늘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뒤에야 그 값짐을 알게 된다. 지나감, 불편함, 낡음 같은 것들이 사라지는 지금, 혹자는 이 편한 세상에서 뭣이 그립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언젠가는 사라진다. 베틀도, 외양간도 사람도 말이다. 그러니 더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사랑할 일이다.

[출처] 홍북읍 신정리 상유정마을 - 마을톺아보기조사, 글 김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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