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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52년 외길…“행복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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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52년 외길…“행복한 순간들”
  • 윤종혁
  • 승인 2019.12.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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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최고참 수의사 강영석 현역 은퇴

1967년 2월 15일. 홍성에서 세번째로 가축병원 문을 열었다. 52년 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한 길을 걸었다. 20대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게 됐다. 홍성에서 활동하는 수의사 중 최고참인 ‘강영석동물병원’ 강영석(78) 수의사가 이달말 현역에서 은퇴한다.
홍성읍에서 태어난 강영석 수의사는 어릴 적 서부영화를 보며 소와 말을 좋아하게 됐다.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뛰노는 동물을 보면서 본인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동물을 키우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농사지을 땅도 부족할 때였다. 드넓은 초지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동물과 관계가 있는 수의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전국에는 서울대와 서울시립대 두 곳에만 수의학과가 있었다. 서울대에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2차로 서울시립대에 도전해 합격했다. 졸업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2053번째로 수의사가 됐다. 젊은 수의사 강영석은 고향 홍성에 본인의 이름을 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강영석 수의사가 개원했을 당시 지금의 홍성전통시장 마늘전 자리에 우시장이 열렸다. 장날이 되면 소를 사고 파느라 북적였다. 농민들은 소가 아프면 우시장까지 끌고 나와서 치료를 받았다. 우시장은 만남과 거래의 장이자 소에게는종합병원과 같은 곳이었다. 개원했을 당시 홍성에 한우는 몇백마리 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장을 다니다가 시간이 흘러 50cc 오토바이를 샀다. 당시 오토바이도 귀해서 홍성성당에 1대 있었고, 홍성에 다 합해도 10대도 안 됐을 때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에 출장을 가면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오토바이 뒤를 쫗아 다녔다. 밤이고 낮이고 정신없이 일했다.
주중과 주말도 없었다. 출퇴근 개념도 없이 홍성 뿐 아니라 예산과 청양, 서산 등 여기저기에서 진료를 요청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열심히 다녔다. 당시 소는 농촌에서 제일 비싼 재산이었다. 소가 아프면 온 가족이 모두 걱정을 할 때였기에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왕진가방을 오토바이에 싣고가다가 잊어버리기도 하고, 검문소에서 검문을 당하기도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돈은 없었지만 모두가 가족처럼 생각하고 챙겨주는 따뜻한 정이 넘쳤습니다. 때 되면 아무 집에서나 같이 점심 먹고, 치료비가 부족하면 외상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가을에 가을걷이 끝나면 쌀로 갚기도 하고, 배추로 갚기도 하고…. 참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개원 후 10여년이 지나 지금의 부지를 매입해서 집을 짓게 됐다. 셋방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동물병원과 집이 함께 있다 보니 생활이 더 안정화됐다. 4남매를 무탈하게키워냈다. 막내아들 상규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충남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강영석동물병원’을 지켜나가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개원했을 당시만 해도 집에 소 한 마리의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가축이 아니라 가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육 방법도 발전했고, 여러 환경이 변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연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축산업이 됐으면 합니다. 50여년 동안 함께 한 여러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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