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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젠 ‘그들’이 아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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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젠 ‘그들’이 아닌 ‘우리’
  • 홍성신문
  • 승인 2019.12.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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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이주민센터 유요열 대표
홍성이주민센터 유요열 대표

지난 7월 22일 새벽, 홍성을 출발한 승합차 한 대가 그날 아침 삼척에서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직후 3명의 태국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으면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그들은 왜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을까? 같은일을 위해 같은 차를 탔고 같이 사고를 당했는데 왜 그들은 숨어야만 했을까?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왜?

그들은 미등록체류(부디, 범죄자 취급하는 ‘불법’이란 말은 사용하지 마시길…)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치료받고 보상받는 것보다 강제 추방당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급히 수습하고 경찰이 오기 전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고를 당한 그들은 심지어 자기가 살 던 집에 편히 돌아가 쉴 수도 없었다.

언론사 기자들이 상주하고 있어 불안했던 것이다. 그들 중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파악된 한사람은 병원에 오지 않으려 해서 어려운 설득과정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들 중 두 명은 사고 바로 다음 날에도 일하러 가야만 했다. 이후 상담 결과, 그들 모두 3~6개월의 임금체불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출입국관리법 제84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실을 지체 없이 지방출입․외국인관서의 장에게 알려야 한다’고 한다. 단, 사기, 폭행, 권리행사방해, 성폭력 등 형사적 피해자와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통보의무가 면제 된다. 그들은 교통사고 피해자였으니 신고면제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잘 몰랐거나 혹 알았다 해도 신고면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한국 사회 분위기를 알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법이 어떻든 신고 면제가 되든 안 되든 이 사건은, 한국사회가 아직 ‘그들’을 ‘우리’로 받아들이고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람이 피해를 당했는데 신고면제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전혀 해당될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한 때 이주노동자들은 세금도 안 내고 번 돈을 자기 나라에만 보내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존재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19일 ‘JTBC 뉴스룸’은 이주노동자들이 매년 내는 총 소득세가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했고, 팩트체크 전문언론 ‘뉴스톱’의 6월 24일 보도는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소비 효과가 지난해 86조7000억원이었고, 올해는 93조7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구 10만 소도시 홍성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홍성군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등록 외국인노동자 1292명과 결혼이민자 365명을 포함하여 총 3641명이라고 한다(행정안전부 2018년 11월 1일 기준). 미등록체류 이주노동자의 수는 정확히 알 순 없으나 단시간 노동자와 일시거주자까지 포함한다면 1000명은 족히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모두를 합하면 홍성 인구의 5%가 넘는 큰 수의 이주민들이 홍성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홍성 안에 어떤 지역은 수백 명의 특정 국가 외국인과 가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이주민의 식당과 마트가 늘어나고 성업 중이다. 농촌 밭일의 대부분을 그들이 맡아 하고 있다. 농축산 업종은 이젠 이주노동자들 없이 운영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주말이면 대형마트와 명동거리 상가에 북적이는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것도 그들이고, 비어 있던 집을 채워 세 들어 사는 이들도 그들이다. “외국인 없이는 장사할 수 없다”, “공장 운영이 안 된다”, “농촌 고향을 그들이 지킨다.”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닌 현실이다.

작년 연말, 일본 참의원은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과 법무성설치법의 일부 개정 법률안’을 여당 강행으로 통과시켰다. 외국인들을 위한 새로운 체류자격을 신설하고, 단순노동직에도 사실상 영주권의 문을 열어 주었으며, 총 224억엔의 큰 예산을 배정해 교육·생활·금융 등 다각적 외국인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 법은 한마디로 ‘적극적인 외국인 끌어안기’법이라 불린다. 보수적인 일본이 ‘외국인 노동력 문제’ 논의를 시작한 지 10개월도 안되 법안 통과까지 강행한 것은, 이미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나온 결론이라는 평가다. 이는 일본만이 아니라 독일, 싱가포르, 중국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들이 앞 다투어 시행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이즈음에서, 이젠 한국사회와 우리 지역은 선택할 때가 되었다. 우리끼리 살 것인가, 그들과 더불어 살 것인가? 그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라면, 우리 경제에 기여하는 바도 없고 우리 일자리만 뺏는 사람들이라면, 등록·미등록 상관없이 외국인 인력을 그만 수입하고 그들을 본국으로 보내는 것이 맞다. 그들이 정말 필요 없다면 어렵게 그들을 고용할 것 없이 우리끼리 잘 살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필요에 의해 데려 오고 우리 필요에 의해 남은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우리 경제와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그런 우리의 필요 때문이라도 그들을 인간 대접해 주는 것이 맞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주민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일을 부려 먹고 그로 인해 돈은 벌었는데, 그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 현 상황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에 가 보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살려내려 애쓴 주민들, 이주노동자들에게 함부로 욕하는 사람에게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항의해주었다던 주민, 이주노동자들 덕분에 우리 가게가 살았다며 고마워하던 주민, 누군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멈추어 서게 되는 그런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라고 말해 주던 주민, 이주민에 대한 일반 주민의 인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의 시선은 정말 일부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더욱 더, 그들을 똑같은 인간으로 대해 주는 우리 사회되어야 한다. 그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법 말고, 그들도 인간답게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홍성에서 살기 위해 찾아 온 다양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이곳에서 발전하며 존중받으며 살아야 할 홍성주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젠 이주민 이주노동자들도 ‘그들’이 아닌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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