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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76] 임마누엘 칸트 - 앎과 삶 사이, 커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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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76] 임마누엘 칸트 - 앎과 삶 사이, 커피가 있었다
  • 홍성신문
  • 승인 2019.12.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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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권미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철학자 칸트에게 삶은 마라톤과도 같았다. 그의 삶에 결승점은 늘, 오랜 경주 끝에 닿을 수 있는 아득한 지점에 있었다. 예순여섯이 되어 그는 비로소 집을 가졌고 쉰일곱이 되어 그는 비로소 책을 냈으며 마흔여섯이 되어 그는 비로소 대학에 교수가 되었다. 생각을 매듭지어야만 행동에 옮기는 특유의 습관 때문이었다. 물건 하나도 제 자리에, 제 각도로 있어야 하는 그에겐 삶의 모든 것이 정돈의 대상이었다. 집을 사기 앞서 집이란 무엇인지 깨우쳐야 했고 책을 내기 전 책이란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으며 교수가 되기 전 교수는 왜 되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했다. 남들이 당연히 여기는 지점에서 그는 돌아보고 곱씹으며 의미를 되새긴 것이다.

무엇이든 신중한 그에겐 사랑조차도 에둘러 가야 할 <삶의 마라톤>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고백 앞에서 그는 사랑에 관한 이론서를 탐독하느라 답변의 시기를 놓쳤고 결혼하고픈 여인의 청혼 앞에서 그는 결혼하면 좋은 이유와 좋지 않은 이유를 고민하느라 결혼할 시기를 놓쳤다. 흔히 사변(思辨)이라 불리는 생각과 생각 사이에 머물며 그는 지독한 훈련으로 자신을 연마했다. 그것은시계추의 진자 운동과도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그는 일 초의 어긋남도 없는 시계추처럼 일상을 되풀이했다. 그것은 넓은 세계 대신 깊은 세계로 나아가려는 의지의 결단이었다. 단한 끼 식사로 하루를 해결하고 오후 세 시면 어김없이 산책에 나서는 그에겐 대상에 대한<응시>만이 유일한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다. 민들레가 노란빛을 더하면 날씨가 추워질 거란 예측이나 어제 세 번 감겼던 포도 넝쿨이 오늘은 다섯 번 감겨 있음을 발견하는 자연에 대한 관찰은 깊이를 향해 나아가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돼주었다.

세계를 매혹시킨 <이성 비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것은 일상의 반복에서 길어 올린 융숭 깊은 <응시>의 철학이었다. 신이 만들어준 질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가자는, 법과 왕국의 주인을 신에서 인간으로 바꿔 나가자는 <순수 이성 비판>이나 선을 행하고 악을 추방하자는, 인간 이성의 선한 마음, 즉 선의지를 바탕으로 살아가자는 <실천 이성 비판> 그리고 앎과 삶 사이에서 내 삶의 방향은 오직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판단력 비판>은 시계추와도 같은 일상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의 결실이었다.

그에게 커피는 절제의 상징이었다. 모든 일에 규칙을 만들어 산 그는 커피조차도 <하루 한 잔>을 원칙으로 했다. 말년이 돼서야 커피 맛에 눈뜬 그는 저녁 식사 후 마시는 한 잔의 커피를 삶의 위안으로 삼았다. 커피가 제때 준비되지 않으면 그는 불같이 화를 냈고 특유의 성마른 목소리로 칭얼대듯 커피를 요구하곤 했다. 그것은 마라톤 끝에 주어지는 서늘한 휴식과도 같았다. 오랜 노력 끝에 닿을 수 있는 삶의 결승점은 커피가 있어 행복했다. 그것은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를 자신의 우주로 믿고 산 그에게 주어진 이방의 정취이자 풍경이었다. 자신의 고향은 키워낼 수 없는, 이국의 정취가 가득 담긴 커피를 마주하며 그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땅을 넉넉히 그려보곤 했다. 그것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런던을 온전히 그려내던 것과 같은 지독한 학습의 결과였다. “생각할수록 마음을 경외케 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또 하나는 내 마음속 도덕법칙이다.” 배가 고파도 힘든 자에게 나눠 줄 줄 아는 미덕을 최고의 선이라 여긴 그에게 커피는 향기만으로도 훈훈해지는 나눔이자 베풂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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