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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3] 파트리크 쥐스킨트 - 커피 향, 그 치명적인 매혹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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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73] 파트리크 쥐스킨트 - 커피 향, 그 치명적인 매혹에 관하여…
  • 홍성신문
  • 승인 2019.11.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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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향기에 목숨 건 가공(架空)의 인물이다. 그에게 향기는 곧 영혼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생명이자 숨결이며 존재이자 역사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기억하는 것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향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큰 다리는 지문과도 같은 각자의 향기인 것이다. 적어도 소설 속 주인공 그루누이에게 향기는 그런 존재였다.

삶의 비극은 늘 간극(間隙)에서 시작된다. 향기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그였건만 그는 정작 자신만의 향기를 가질 수 없었다. 생선 더미 위에서 태어난 그에겐 비릿한 생선내가 냄새의 전부였고 삶의 향기여야 할 어머니는 그를 버렸으며 지문과도 같은 체취는 애시당초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줄 세상의 모든 향기들은 가질 수 없는 열망이 되어 그의 삶에 결핍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천재와도 같은 그의 후각이었다. 향기를 가지지 못한 자에게 향기를 알아보는 예민한 후각은 무엇으로도 위로될 수 없는 비애이자 역설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향기에 집착한 것은... 향기를 가질 수 없다면 만들어 가지면 되는 일이다. 향기가 없다는 이유로 치렀던 갖가지 고통들, 저주받은 영혼이어서 향기가 없을 거라는 모함에서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차별과 학대는 향기를 만들어 가지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잉여의 아픔이었다. 그렇게 그는 향기에 취해갔고 그렇게 그는 향수에 빠져들었다.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향수를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에게 향수란 대가를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치명적인 매혹이다. 향수를 얻기 위해 13명의 여인들을 차례로 죽이고, 죽인 여인들의 피부를 벗겨 향기를 추출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못해 차라리 처연하다. 향수 한 방울을 얻기 위해 한 사람을 살해하고 13개의 향수 방울을 합쳐 마침내 완성되는 이집트 전설의 향수란,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목숨을 드려 완성하는 살육의 결실이었다.

세상의 향기란 그런 것이다. 인간을 매혹시키는 모든 향기는 생명을 드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고난의 결실이다. 커피나무의 고향 에티오피아가 <부나 칼라 (Buna Qalaa)>라는 의식을 가지게 된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커피는 살육의 대상이었다. 고난 당한 성자를 기려 제의(祭儀)를 행하듯 살육 당한 커피 열매를 위해 제의를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나 칼라였다. 그들의 의식 속엔 향수 한 방울을 위해 죽어가는 여인들처럼 향기 한 모금을 위해 죽어가는 커피 열매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그것은 영혼을 다해 준비해야 할 숭고한 의식이었고 마음을 다해 완성해야 할 거룩한 의례였다. 에티오피아인들의 눈에 비친 커피는 신의 눈물에서 생겨난 영혼의 열매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의식을 치르며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커피 향기를 신께 드리니 부족 모두에게 행복을 내려달라>는 간절한 주문이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커피를 통해 의식을 회복하고, <커피를 몸에 넣고 죽은 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슬람교도들의 믿음은 모두 커피를 영혼으로 여긴 데서 생겨났을 것이었다. 사형대에 오른 그루누이가 향수 한 방울로 세상을 유혹했듯, 커피 또한 매혹과도 같은 향기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누군가의 영혼을 녹이는 치명적인 유혹이 되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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