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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72]호안 미로 - 마음의 정원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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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72]호안 미로 - 마음의 정원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
  • 홍성신문
  • 승인 2019.11.1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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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 커피비평가협회충남본부장
권미림
커피비평가협회충남본부장

마음에 정원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마음의 정원에 자기만의 꽃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그것은 모자 안에 감추어진 보아뱀과도 같다. <모자>라는 그림 속에 <코끼리가 삼킨 보아뱀>을 숨겨 두었던 어린 왕자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숨겨 두는 일, 그것이 바로 자기만의 꽃인 것이다. 그것은 상식과는 다르게 살아보려는 의지를 통해 만들어진다. 모두가 중력에 순응할 때, 중력과는 다른 방향으로 서보려는 노력이 자기만의 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호안 미로의 삶 또한 그러했다. 모두가 난해한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명료한 그림을 그리려 애썼고, 남들이 심각한 그림을 그릴 때 그는 그림 앞에서 웃을 수 있는 해학을 그려내려 애썼다. 초현실주의가 대세를 이루던 19세기였다.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화단(畫壇)은 무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그려내며 <자기만의 꽃>을 표현했고 대중들은 모호한 그림들을 읽어내느라 늘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고무줄처럼 늘어진 회중시계(달리 作 <기억의 지속>)나 심장에 구멍이 뚫린 여인(피카소作 <책 읽는 여인>)이 대표적이었다. 피카소보다 12년 늦게 태어난 그에겐 피카소의 화풍을 뛰어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피카소는 조국을 떠나 파리에 둥지를 틀고 있었지만, 그의 조국 스페인은 여전히 피카소라는 천재 화가에 열광하고 있었다. 화단(畫壇)의 이정표와도 같은 피카소를 뛰어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동질의 뿌리를 가진 동포이자 파리에서 시간을 함께 한 관계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섬세한 관찰력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린 그에겐 모자 속 보아뱀과도 같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고 그러한 능력은 곧 상상력이 되어 그의 그림에 녹아들었다. 달과 별과 새 같은 동화적 요소에 노랗고 빨갛고 파란 원색을 더해 만든 그림은 대중을 웃게 하리라던 그의 꿈을 실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다양하고 복잡한 색채들을 점과 선, 몇 개의 원으로 단순화하며 그의 그림은 점점 더 명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림이 명쾌해질수록 그 안에 든 상상력은 더 넓어졌고 넓어진 상상력만큼 보는 이의 마음 또한 흔쾌해졌다. 자신의 작업실을 채소밭이라 여기며 <그들이 열매 맺도록 도와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여겼던 신념처럼 사람들은 채소와도 같은 그의 작품에서 풋풋함과 신선함을 마음껏 누리기 시작했다.

마음의 채소밭에 이르는 그의 길목엔 늘 커피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커피는 피카소에게로 이르는 또 하나의 관문이었다. 그가 태어나 자란 바르셀로나 뒷골목엔 스페인 예술가들의 아지트 4gats(콰트로 가츠)가 있었고 그는 자주 그 곳에 들러 마음을 내려놓곤 했다. 보석상이었던 아버지는 화가가 되려는 그를 끊임없이 압박했고 신경쇠약에 걸릴 만큼 괴로웠던 그는 4gats에 들러자주 커피를 마셨다. 거기, 피카소는 없었지만 피카소가 외상값 대신 그려주었다는 포스터는 남아 울적한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누구에게나 삶의 고비는 있을 것이다. 포스터와 맞바꾼 삶의 외상값은 피카소에게도그에게도 모두가 넘어야 할 삶의 고비이자위기였다. 마음의 정원이란 어쩌면 삶의 위기를 견딘 자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예술가가 된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삶을 믿는 것이다.> 자신의삶을 믿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그는 마침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정원을 만들기시작했다. 그가 몬주익 언덕에 미술관을 세운 것도,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 자신만의 문양을 가지게 된 것도, 그리고 국내 한라면의 포장지에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등장한 것도 모두가 마음의 정원을 만들고 그안에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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