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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5> 콜시츠키 - 커피라는 이름의 '목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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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65> 콜시츠키 - 커피라는 이름의 '목만이'
  • 홍성신문
  • 승인 2019.09.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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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우리 모두에겐 <목만이>가 있다.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삶의 희망이다. 목만이를 찾아가는 길은 모두 달라, 누군가에겐 쉽게 오는 길이 누군가에겐 평생 오지 않기도 한다. 애쓸수록 허물어지는 삶이 있듯, 애쓰지 않고도 세워지는 삶이 있는 것이다. 삶이 아이러니인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세워지고 허물어지는 모든 삶들은 어쩌면 태생적으로 예정된,운명이란 이름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때를 읽고 안목을 키우며 기도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콜시츠키에겐 커피가 그랬다. 커피를 볼 줄 아는 그의 감각은 시대를 앞서는 무기가 돼주었고 동서를 아우르는 그의 경륜은 애쓰지 않고도 삶을 세워갈 든든한 자산이 돼주었다. 남들에겐 혹독한 삶의 위기가 그에겐 도리어 기회로 작용한 것이다. 비엔나 전투가 한창이던 17세기였다. 중동의 절대 권력 오스만은 동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에 포위된 오스트리아는 외부에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도 전보도 없던 시절, 파발을 전할 유일한 수단은 인편이었다. 15만 병력의 적진을 뚫고 가려면 외모도 언어도 완벽한 연락병이 절실했다. 그 때 등장한 게 콜시츠키였다. 당시 상인이었던 그에겐 중동을 드나들며 배운 터키어가 있었고 투르크 혈통과 유사한 이국풍의 외모가 있었다. 콜시츠키의 능력을 간파한 수장은 그를 즉시 발탁했다. 변장술은 완벽했다. 터키군으로 변복한 그는 유창한 터키어에 터키 노래까지 곁들이며 삼엄한 경비를 빠져나갔다. 당시 검문 중이던 적진의 사병이 “피곤해 보인다. 도와줄 일은 없냐?”며 동료 취급했다는 일화는 그의 변장술이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보여주는 비화가 되어 지금도 남아 있다.

폴란드는 즉시 지원에 나섰다. 신성로마제국의 동맹 리투아니아 또한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그렇게 마무리된 비엔나 전투는 난공불락과도 같던 오스만 제국에 치명상을 입히며 오스트리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전쟁 후엔 늘 논공행상이 따른다. 비엔나 수호의 일등공신 콜시츠키에겐 포상이 주어졌고 그는 집 한 채와 빈 명예시민권, 그리고 오스만대군이 남기고 간 원두를 챙기는것으로 그간의 노고를 결산했다. 모두가 말의 먹이쯤으로 여기던 원두를 그만이 알아본 덕분이었다. 오스만 대군이 남기고 간 500여 자루의 원두는 콜시츠키 사업의 미래가 되어 비엔나커피의 새 장을 열었다. 1683년 비엔나 최고(最古)의 도시 징거스트라세에 세운 콜시츠키의 카페는 비엔나 최초의 카페라는 명성과 함께 시민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 명물이 되어갔다. 커피에 우유와 꿀을 넣어 만든 멜랑쥐(Melange), 터키 옷을 입고 절구로 커피를 빻아 내리는 콜시츠키의 모습, 그리고 오스만 국기를 본 따 만든 크루아상은 전쟁을 끝낸 시민들을 유혹하기에 더없이 좋은 호재였다. 그것은 시대를 앞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호사였다. 터키를 오가며 쌓은 청년 시절의 경험이 원두의 가치와 원두를 통해 세워질 새로운 문화를 보게 한 것이다. 그가 세운 카페 <푸른 병 집(Zur Blauen Flasche)>이 5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블루보틀>이란 이름으로 사랑받는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목만이>는 홍콩 영화 <친니친니>의 여주인공이다. 피아니스트였던 목만을 사랑한 건 피아노 조율사 가후였지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람둥이 소설가 목연이었다. 가후가 애끓는 연정을 안으로 삭히는 사이, 목연은 갈고 닦은 연애의 기술로 단박에 그녀를 사로잡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한 모양이다. 훈련되지 않은 삶이란 어쩌면 밑밥도 없이 던져둔 낚시줄처럼 그렇게 허무하고도 부질없는 일임을, <친니친니>도 <콜시츠키>도 그렇게 큰 소리로 웅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자신만의 목만이를 찾아가는 일이란 어쩌면, 운명이라는 이름 앞에서 써내려가는 소소하지만 끈질긴 노력의 여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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