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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참, 문대통령이 언급한 남강 이승훈과 풀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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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참, 문대통령이 언급한 남강 이승훈과 풀무학교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9.08.20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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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이승훈 선생
남강 이승훈 선생

문재인 대통령이 신한반도 구상을 밝힌 8·15경축사의 마지막을 남강 이승훈 선생의 어록을 이용해 정리하는 것을 시청하며 우리 고장 풀무학교가 생각났다.

“나는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우리가 분단을 이기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라고 말했다.

평안북도 정주에 태어난 남강 이승훈은 어느날 도산 안창호의 “나라가 없이는 집도 몸도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 영광을 누릴 수 없다. 나라를 잃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백을 잃는 것이다”라는연설을 듣고 인생을 바꿨다.

사업으로 축적한 재산을 쏟아 오산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오산학교는 1907년 개교할 때 학생은 7명이었으며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1915년 조만식이 교장으로 취임했다. 3·1운동 당시 일본헌병들에 의해 학교가 소각되고 1년 6개월 동안 폐교되었다.

1920년 9월 학교를 다시 열고 200여 명의 학생들을 수용했다. 학생들에게 자치권을 주어 기숙사 생활, 시험, 동문회 회의 등을 자치적으로 운영하도록 했으며, 협동조합을 만들어 쌀·옷감 등 생활필수품과 학생들이 쓰는 학용품을 취급하도록 했다.

1942년 9월 교사와 학생 70여 명이 정주서에 구속되었다가 모두 기소유예로 석방되었으나, 교사들은 모두 사표를 강요당하여 학교를 떠났다. 8·15해방 후 월남하여 1953년 부산에서 오산학원 재건위원회를 조직해 오산고등학교를 개교했으며, 1954년 4월 서울로 학교를 이전했다.

한편 남강 이승훈의 종손으로 오산학교를 졸업한 이찬갑은 정주에서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만드는 등 이상촌 만들기 운동을 했다.

3·1운동으로 감옥에 있던 이승훈 이사장과 조만식 교장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다고 한다. 이찬갑은 1948년 남한으로 내려와 인천, 부산 등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1958년 충남 홍성의 홍동에서 주옥로를 만나 풀무학교를 세웠다.

이찬갑은 1959년 우리나라 최초로 알려진 협동조합을 학교에서 시작해 오늘의 풀무생협이 됐다.

그의 농촌교육과 협동교육을 받은 풀무학교 졸업생들이 홍동에서 협동조합, 지역신문, 유기농업 등을 실천하며 마을교육공동체를 전국에 확산시키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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