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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9>알렉산더 포프 - 커피, 반쯤 감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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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9>알렉산더 포프 - 커피, 반쯤 감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 홍성신문
  • 승인 2019.08.0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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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미 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온다. 그것은 고난을 이겨내고 오는 환희와도 같다. 어둠의 터널 끝에서 만나는 빛은, 꿈꾸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특권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예감하고, 빛을 꿈꾸고 빛을 쟁취하려는 굳은 의지가 마침내 삶의 빛을 틔워내는 것이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삶이 그랬다. 그의 삶은 기나긴 어둠 끝에 맞는 환희의 빛과도 같았다.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때 척추결핵에 걸려 곱사등이 됐다. 그는 평생 다리를 절었고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게다가 그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가 살았던 17세기, 영국은 성공회를 국교로 삼았고 성공회가 아닌 신자들에겐 학교 입학도, 공직도, 심지어 런던에서 10마일 안쪽에 사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로 이사한 그는 혼자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시작(詩作)에 눈을 떴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와 영국 시인 드라이든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양대 산맥이었다.

그가 시단(詩壇)의 주목을 받은 건, 아벨라르라는 실존 인물을 토대로 쓴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라는 시 덕분이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신학자 아벨라르는 성직자의조카딸, 엘로이즈를 가르치며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아들을 낳고 비밀 결혼을 계획하지만 숙부의 반대에 부딪쳐 잠적하고,두 사람의 잠행을 아벨라르의 계략이라 여긴 숙부는, 아벨라르의 성기를 자르는 것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암흑과도 같은 고통의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낸다. 세상 밖 수도원에 살지만 절절한 사랑의 기억은 여전히 간직한 채다. 그들에게 사랑은, 티 없는 마음을 파고드는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이다. 햇빛과도같은 기억이 아니고는, 암흑과도 같은 상실의 아픔을 견뎌낼 수 없는 까닭이다. <흠 없는 수녀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을잊고 세상으로부터 잊히나니/티 없는 마음은 영원한 햇빛/모든 기도를 받아들이고 모든 욕망을 체념하나니...> 인간에게 기억이란 어쩌면,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햇빛과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엘로이즈의 노래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은 한 편의 영화가 되어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에 지쳐가는 남녀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사랑만은 특별하길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역설로 그려냈다.

포프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척추결핵의 후유증으로 1미터 37센티의 단신이었던 그는 책을 벗 삼아 평생을 산, 또 하나의 아벨라르였다. 아벨라르에게 수도원이 있다면, 포프에겐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17세기 영국은 커피하우스를 통해 격변의 정치를 도모했고 그 또한 커피하우스를 드나들며 고전의 부활을 논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존 드라이든과의 만남은 커피하우스에서 누리는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나이팅게일>이라 불릴 만큼 목소리가 고왔던 그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커피하우스에 매력을 더했다. 그에게 커피하우스는, 영원한 햇빛과도 같은 존재였다. 거기엔속세의 사랑과는 다른 교감이 있었고 삶을향한 긍휼이 있었으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의지와 열망이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커피는 정치인을 현명하게 하고 반쯤 감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했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 어둠 속에 있었다. 신이 말씀하셨다. 뉴턴이 있으라 그러자 모든 것이 빛이었다.> 평소 지인들의 묘비에 비문쓰기를 즐겼던 그는 뉴턴의 비문 앞에서 또하나의 빛이 되었다. 그에게 빛이란 찰나이자 영원이고, 환희이자 기쁨이었다. 그것은어느 한 순간도 절망하지 않은, 인내와 노력,그리고 성실로 일궈낸 자기 자신의 삶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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