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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2>슈만 -카페인과 함께 한 금기(禁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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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 <52>슈만 -카페인과 함께 한 금기(禁忌)의 역사
  • 홍성신문
  • 승인 2019.06.1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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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미 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인간은 금기된 것들에 열광한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이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따지고 보면 금단의 열매를 향한 갈망에서 시작됐다.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 인간의 내면을 달뜨게 하고 마음을 흔들어 금기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금기는 환상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금기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대상은 실재(實在)가 아닌 오마주가 되고 닿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환상과 겹쳐지며 경배의 대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슈만에겐 클라라가 그런 존재였다. 미래가 불투명한 슈만에게 클라라는 넘볼 수 없는 금단의 과실과도 같았다. 클라라에겐 피아노를 가르치는 아버지가 있었고 신동이라는 타이틀이 있었으며 미래를 보장해줄 궁정의 후원이 있었다. 법학을 전공하다 뒤늦게 피아노로 전향한 슈만에게 클라라는 출발점부터가 다른 울타리 밖 존재였다. 그런그녀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불행은잉태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 뷔크는슈만의 피아노 스승이었고 슈만의 형편을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돈도 미래도 없는 슈만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슈만과 클라라의 관계를 알았을 때 뷔크는 클라라를 드레스덴에 보내는 것으로 명백한 반대 의사를표명했다. 슈만을 미성년자 유괴죄로 법정에 세우며 뷔크는 두 사람의 관계에 압력을가하기 시작했다.

금기는 장애에 부딪칠 때 진가를 발휘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했듯, 슈만과 클라라 또한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치며 결속을 다져갔다. 열 네 살에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클라라가 드레스덴에 가 있는 동안 더욱 돈독해졌고 결혼에 반대하는 뷔크를 법정에 세우며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세계, 그 안에 나는 산다네/ 당신은 나의 하늘, 그 곳으로 나는 날아가네/ ...당신 안에 내 모든 근심을 묻고/ 당신의 사랑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네...> 1840년, 클라라를 아내로 맞으며 슈만의 삶은 절정에 달했다. 슈만의 눈에 비친 아내는 미르테(은매화)처럼 고결했고 슈만은 대표 가곡 <헌정>이 담긴 <미르테의 꽃>을 헌정하며 꿈결과도 같은 그녀와의 삶을 이어갔다.

슈만의 삶에 클라라는 샘물과도 같았다. 그것은 그가 즐겨 찾던 라이프치히 카페의 분위기를 닮아 있었다. 당시 슈만이 찾던 카페 <바움>은 삶에 지친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다. 19세기 유럽은 전제 군주 시대에서 시민사회로 옮겨가는 격변의 시기였고 시대에 지친 예술가들은 카페 <바움>에 앉아 삶의 고뇌를 함께 했다. 멘델스존도 리스트도 바그너도 모두 그렇게 일상의 잔재들을 <바움>에서 털어내곤 했다. 앤티크풍 로스터에 커피를 볶고 퍼컬레이터에 커피를 내려 마시는 카페 안 풍경은 삶의 애환을 잊게 하는 마법의 샘물이었다. 카페 바움에 멘델스존이 있다면 슈만의 집엔 클라라가 있었다. 좀처럼 뿌리 내릴 수 없는 슈만의삶에 클라라는 위로이자 안식이었고 샘물이자 희망이었다. 그녀와 결혼한 해에 작곡한138곡의 가곡은 그의 삶에 가장 왕성한 창작의 결실들이었다.

그의 삶은 그러나 금기의 연속이었다. 신(神)은 샘물과도 같은 클라라를 그에게 주었지만 지휘자로서의 길은 허락하지 않았다. 멘델스존과 바그너가 맡고 있던 각각의 관현악단은 후임을 원하는 그에게 끝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사이, 정신병은 깊어졌고 그는 자살이라는 또 하나의 금기를 넘어 생을 마감했다. 맨발로 뛰어나가 라인강에 투신한 건 그의 나이 44살 때의 일이었다. 첫 번째 금기가 그를 살렸듯 두 번째 금기는 그를 데려갔다. 첫 번째 금기와 두 번째 금기 사이, 그에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걸까. 그러고 보면 금기란, 열리지 않을 때 가장 안전한 판도라의 상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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