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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산리 암매장 민간인 2명 69년만에 유족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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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산리 암매장 민간인 2명 69년만에 유족 찾아
  • 이번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5.3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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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한국전쟁기 희생된 민간인들(1)
▲ 홍성에서 발굴된 유해 21구를 국회 앞에 놓고 과거사법 조속 통과를 촉구하는 한국전쟁유족회 국회 특별법추진위원회 회원들.

한국전쟁 당시 불법으로 학살당해 광천읍 담산리에 암매장됐던 민간인 2명에 대한 유족을 69년 만에 찾았다. 유전자 감식 전문기관인 서울 휴먼패스는 5월초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홍성유족회에서 의뢰한 21기 유해에 대한 DNA 유전자 감식 결과 이종민씨와 고 이강세씨의 유전자형이 87%(검사 15 항목 중 13항목 일치), 김동규씨와 고 김숙제씨의 유전자형이70% 일치하는 것으로 통보했다. DNA 감식 결과는 상염색체의 유전자형이 99.99% 일치해야 법적으로 친자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위 두 사람은 수 십명이 섞여있는 유해들 가운 데서 수습해 맞춰냈기 때문에 친자관계로 인정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다.

이강세는 해방 직후 홍성군농민조합장으로 농민의 경제, 정치 투쟁을 벌이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해 선전부장으로 활동했다. 김숙제는 광천읍 내죽리 출신으로 서울 세브란스 병원 의사로 근무하던 중 추석 명절 고향에 내려왔다 죄우익 싸움에 엮여 담산리에서 총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지난 2016년 광천읍 담산리 오서산 기슭 폐금광에서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유해 21기를 발굴, 홍북읍 용봉산 아래 평화공원 컨테이너에 임시 보관하고 있다.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난 당일 보도연맹원 중 이강세 등 간부급들이 먼저 끌려갔으나 어디로 갔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10월 8일에는 광천지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던 주민 36명이 경찰에 의해 트럭에 실려가 담산리 중담마을 한복판에서 한밤중에 총살됐다. 조사단은 담산리 폐금광에서 3차에 걸친 발굴에서 21구의 이빨, 정강이, 대퇴부 등 그리고 확인 불가능한 뼈와 단추, 고무신, 버클, M1소총탄두 등 24상자 분량을 수습했다. 유족회는 지난해 7월 21구의 유해와 유족 15명의 시료를 채취해 휴먼패스에 DNA 감식을 의뢰했다. 홍성군은 감식비의 일부인 2300 여 만원을 지원했다.

지하에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한다

사단법인 한국전쟁유족회 국회 특별법추진위원회(대표 김하종 경주유족회장)는 5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 등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하며 상경 투쟁을 벌였다. 유족들은 홍성에서 발굴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해 21구와 대전 산내 골령골유골 19구를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싣고 가 상복을 입고 집회를 열었다. 전국의 민간인 학살 유족회회원 300여명이(주최측 계산) 참가했다. 이날 집회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유민아빠’ 김영오씨, 1966년 인도네시아 민간인 학살피해자인 베드조 운퉁 YPKP65 대표도 참가했다.


이날 집회는 결의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정부와 국회는 미해결유족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즉각 개정하라 △정부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후손에게 교훈으로 남길 수 있도록 교과서에 즉각 수록하라 △ 정부는 전국에 묻혀 방치되고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유해를 즉각 발굴하라 △정부는 미국과 이승만정권이 자행한 100만 민간인학살의 가해자를 즉각 처벌하라.

김용일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충남유족회 사무국장은 “자식들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진실을 70년 동안 밝히지 못하고 있어 지하에서 어르신들이 힘을 보태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유해를 모시고간 것” 이라며 법이 통과될 때까지 상경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대 국회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등을 위한 기본법안’을 비롯해 13개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일부 개정 벌률안’등 7개 법안이 제출돼 계류 중이다. 100만 명 넘게 희생된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확인된 희생자는 1만 6500여 명에 불과하다.

북한 인민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을 점령하고 부산을 제외한 낙동강 이북을 3개월 동안 점령, 통치했다. 국군은 1950년 10월1일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진격, 신의주-청진 이남 지역 북한을 2개월 동안 점령, 통치했다. 이 기간에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100만 명씩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에서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국가권력이 적이 아닌 자기 국민들에게 총뿌리를 겨둔 사건들이다. 이승만 정부가 30만 명으로 추정되는 국민보도연맹원을 불법적으로 학살하고 후퇴한 게 대표적인 사건이다. 홍성에서도 용봉산 평화공원 보도연맹 추모비에는 그곳에서 학살당한 61명 명단이 새겨져있다. 그러나 미확인 희생자들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족회는 조사과정에서 추정된 희생자 규모를 630명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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