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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예쁜 우리 할매, 이보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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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예쁜 우리 할매, 이보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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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3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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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구항면 청광리 청광마을<2>

홍성군 청년 마을조사단에서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홍성 지역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유난히 따뜻하고 걷기 좋았던 9월의 날들. 청광마을을 들어갈 때마다 뚜벅이 여행자가 된 듯 자유롭게 거닐었습니다. 많은 주민분들이 늘 반갑게 맞아주셨고 집, 마을회관, 논밭, 나무그늘 아래 등 여러 자리에서 편안히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 이름만큼 웃는 모습도 어여쁜 이보배 할머니.

“금자동아 옥자동아 보배동아” 이름 예쁜 우리 할매, 이보배 할머니

“할머니, 성함이 너무 예쁘셔요. 누가 그렇게 예쁘게 지어주셨대요?”

“엄마가. 옛날에 우리 엄마는... 그때는 이렇게 병원이 읎으니께, 약도 잘 읎고 허니께는 시 살 먹으면 죽고 니 살 먹으면 죽고 아장아장 걸어대니면 죽더리야. 엄마가 애기를 낳아서 킬 때. 그렇게 해서 열하나를 낳았는디 내가 열하나 째리랴, 내가. 다 낳는 대로 시 살, 두 살, 니 살이면 죽어서 못 키웠는디 우리 오빠허고 나하고 둘을 키웠어. 그랬는디 그렇게 열하나 날 동안 딸은 나 하나 났댜. 그래갖고 이름을 아주 어뜨게 지어야 하나 하다가, 옛날에 둥게둥게 할 적에 노래 부르는 게 있잖아. 금자동아 옥자동아 보배동아, 거기서 이름을 따서 보배라고 진 거여. 구엽대서. 그래서 보배라고 져갖고 어디 가든지, 농협 가도 그러고 어디 가든지 그려. 아이구, 웬 이름이 그렇게 이쁘냐고(웃음).”

이보배(83) 할머니의 예쁜 이름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보배 할머니의 어머니는 귀하디 귀하고 사랑스런 막내딸에게 값진 이름을 선물했던 것이다. 그 이름 덕에 지금도 할머니는 어딜 가든 이름 예쁘단 소리를 듣고 다닌다.

“아유, 안 가봤어. 핵교를 워치게 가. 밥도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살았는디. 왜놈들한테 농사체 다 뺏기고서 밥이나 얻어먹으라고 남의 집을 보냈는디 내가 일을 헐 줄 알으야지. 못허고서 가서 울기만 하다 집으로 왔어. 그랬더니 그렇게 일찌감치 시집을 보내더라고. 가서 밥 얻어먹고 살으라고. 어이구, 그때는 뭐... 없는 집에서 데려갔으니께 그 집은 넉넉하겄어? 그 집도 어렵지. 그런데 가서 살고 이내 신랑도 군인 가서 그렇게 허고. 그러니께 어렵게만 살았어, 연태.”

고향인 광천에서, 부모님  밑에서 귀한 막내딸로 하나 남은 오빠와 함께 농사를 도우며 살아오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농사지을 땅을 뺏기면서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 그 후로 남의 집에 들어가 살기도 하다가, 결국은 어린 나이 열여섯 살에 광천 내 옆 마을에 살던 신랑네로 시집을가게 됐다.

 “일찍 여워서 열여섯 살에 갔어. 우리 신랑은 스무 살이구. 그런디 동짓달 그믐날 시집 갔는디, 정월 그믐날 군인 갔어. 한 달 살고 갔어. 그때가 어른 네지 뭐 나는 뭐 알아. 암것도 모르지. 신랑 얼굴도 몰렀어. 못 쳐다봤어, 넘부끄러서. 그때는 지끔 사람 같은감? 넘부끄러워가지고.”

할머니는 군 제대하고 일을 찾아 이곳저곳 찾아나선 남편을 따라다니다, 40년 전 이곳 청광마을 다래울로 이사를 오게 됐다. 광산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 마을에 왔었단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서 광산일은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이 마을에 정착해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이고, 처음에 오니께 뭇 살 것 같대. 하늘만 뵈지 뭐 뺑뺑 돌아 산이고 하늘만 뵈잖여. 그렁게 아주 답답허고 죽겠더라고. 그런디 그냥 그냥 살으니께 공기 좋고 그러니께 그냥.”

▲ 보배 할머니가 가꾸는 집 앞 텃밭의 모습

지금은 집 앞에 조그맣게 텃밭을 일구어 가꿔놓고 본인이 먹을 것과 자식들에게 줄 정도로만 작물을 기르고 있다. 옛날에는 더 넓게 농사도 지으면서 남편과 함께 누에치는 일도 크게 했다고 한다. 집 뒤로 있는 산밭에 뽕나무를 심어놓고 지게로 져서 옮기고 먹이고.

“나도 하우스 크게 졌었어. 옛날에 일루 와서 우리 할아배하고 나하고 누에를 많이 쳤어. 여기다 크게 잠실 짓고서 누에 쳐서 그때는 돈 벌었었는디. 저 산밭에다가 다 뽕나무 심어가지구 그렇게 해서 했는디. 지게로 다 져다가, 돈 없응께 경운기도 못 사고 지게로 다 져다가 그걸 맥여서 했는디 중간에 가서... 약 때미 못허겠더라고. 논이다 약덜 했싸면 죽어, 누에가. 약내 나서.”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결혼생활. 군에 간 신랑을 기다린 시간.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남편의 일자리를 따라 이곳저곳 다니며 농사, 누에 치는 일 등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아왔다. 이런 시간들만큼이나 할머니 인생을 돌아봤을 때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40년 장사 이야기’다.

“아이고, 고생 숱허게 허고 살았어. 지금들은 자손들이 용돈 주니께 먹고 살지. 나도 계속 누에 칠 때만 집에 있었지, 장에 대니며 돈도 벌고. 장사해서. 장사 40년 했어. 한 30년 넘게 했어. 대천, 홍성, 광천, 청양, 서산, 예산... 안 간 데 없지. 오장 다 따라대녔지. 다섯 장이잖아, 일주일이. 다 따라대녔어. 그렇게 해서.”

이곳 청광마을은 유독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 많은 마을이라고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작물을 키워서 팔기도 하고, 직접 상거래를 하면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홍성장, 온양장, 대천장, 서울장, 광천장, 예산장, 청양장 등 거리가 멀든, 가깝든 일주일에 다섯 개 정도의 장터를 전부 다녔다.

“김 장사 많이 했지. 광천김 만드는 디 저기... 대천 은포리라는 데서 김을 만들어, 바다에서 떠다가. 거기서 새벽에, 여기서 3시 되믄 가. 그러면은 막 거기 가면 4시 되믄 일어나서 대문도 하나 안 열어놨지. 투드려서는 깨서 사갖고서, 또 혼자 허는 게 아니라 싯닛이 동업으로 해갖구서 가서 한 잔뜩 사와. 사다 광천 가서 냉겨. 맨드는 데서 싸게 사다가. 냉기고 남으면 이제 소매허고. 김 장사 오래 했어. 그러고 마늘 장사, 고추 장사 안한 거 읎어. 생선 장사도 허고(웃음).”

한창 마을에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여럿이 모여서 팔 물건을 사다가 다 같이 장에 나가 장사를 했다. 보배 할머니 또한 그 안에서 함께 장사를 하셨던 거다. 김 장사, 마늘 장사, 고추 장사, 생선 장사 등 할 수 있는 장사는 뭐든 했다고 한다.

“아이고, 고생 숱허게 허고 이 나이 먹었네. 아이고, 아주 지끔은 살기 괜찮은디 늙어서 뭣헌디야(웃음). 늙어서 아무 쓰잘데기 없어, 인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보배 할머니다.

“애덜이 많아도 애덜이 다 가서 잘 살어서. 시집도 잘 가고. 홍성서 둘 살고, 그러고 부천서 시 집 살고, 용인서 한 집 살고, 영등포서 한 집 살고. 그렇게 지끔 칠 남매 다 잘 살어(웃음). 어려운 딸은 읎어. 그렁께 좋아.”

자식들이 전부 다 잘 커주고 현재 다 잘 살고 있다며 이야기하는 지금, 보배 할머니의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고생한 세월도 다 잊게 해주는 이런 게 행복이지 않을까.

홍성군 청년 마을조사단(주란, 문수영)


<대상마을 모집>
마을조사 및 마을책자 제작에 함께 할 마을을 모집합니다.
△대상 :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마을, 마을자원 발굴 및 마을책자에 관심이 있는 마을
△연락 : 홍성군 마을만들기 지원센터(041-635-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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