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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40>이효석-낙엽을 태우며 커피 향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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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40>이효석-낙엽을 태우며 커피 향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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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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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미 림
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꽃은 거름 위에서 더 잘 피어난다. 거름이 주는 비옥함 때문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생명을 틔우듯, 썩고 기름진 거름 또한 제 몸을 드려 생명을 길러낸다. 생명을 키워내긴 낙엽 또한 마찬가지다. 푸르고 싱싱한 계절을 보내고 나면 잎들은 일제히 떨어져 대지를 뒤덮는다. 얼었던 대지가 초록을 입기까지, 낙엽은 제 몸을 드려 생명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낙엽이 제 삶을 다하는 건 가을이 아니라 봄이다. 씨앗이 대지를 뚫고 올라온 뒤에야 낙엽은 비로소 거두어 태워지는 것이다.

낙엽을 태우며 커피 향을 떠올린 건 소설가 이효석이었다. 갈퀴를 들고 서서 낙엽을 태우며 그는 갓 볶아낸 커피 향을 떠올렸다. 인이 박히도록 커피를 좋아한 그였다. 그가 살았던 1930년대, 커피는 진한 다갈색의 모카가 주류를 이루었고, 그는 일본인들이 마시던 사무라이식으로 커피를 우려 마셨다. 손절구에 빻은 원두를 헝겊 주머니에 넣고, 뜨거운 물에 우려마시는 방식이었다. 우려내기에 쓰이는 원두는 가볍게 로스팅 됐고 불(火)과 어우러져 향미를 덧입은 원두는 헤이즐럿과도 같은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그가 ‘낙엽을 태우며’ 란 글에 쓴, 낙엽을 태울 때 나는 개암 냄새란 다름 아닌 원두가 가진 헤이즐럿 향이었다. 그가 낙엽을 태운 건 가을이었다. 꽃을 키우지도, 화단을 가꾸지도 않았던 그에게 낙엽은 ‘뒷시름처럼 고단한’ 일상일 뿐이었다. 서른여섯에 요절한 그에게 낙엽은 생명보다 차라리 죽음에 가까웠다. 뇌막염으로 세상을 뜨기 전 이미 아내와 딸을 잃었기에, 그의 삶은 더더욱 죽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르게 피는 봄꽃에서 그를 떠올리는 건, 왕수복이라는 여가수 때문이다. ‘노란 꽃 붉은 꽃 봄 따라 피고/인생의 봄 청춘이라 내마음도 피네...’ 로 시작하는 노래, <인생의 봄>의 가수 왕수복은,이효석의 삶에 봄꽃과도 같은 존재였다. 서른네 살에 아내를 잃은그는 유랑하듯 세상을 떠돌았고,여행 차 들른 도쿄에서 왕수복을만났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언어처럼, 상실의 아픔을 견뎌내던 시절이었다. 마음 둘 곳 없던 이효석은 <인생의 봄>과도 같은 왕수복에 운명처럼 빠져들었고 성악을 공부하던 왕수복 또한 이효석에 정처 없이 빠져들었다.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효석은 교편을 잡고 있던 평양의 한 학교로, 왕수복은 언니가 운영하던 평양의 한 다방으로였다.

이효석에게 커피는, 시어(詩語)이자 눈물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그는 왕수복이 있는 다방엘 들러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곤 했다. 아내와 딸을 보낸 지 얼마 안 된 상주(喪主)로서 그가 할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먼저간 아내를 애도하는 일도, 때늦은연인을 인애(仁愛)하는 일도, 그에겐 모두가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었다. ‘...대화까지는 70리의 밤길. 고개 둘을 넘고 개울 하나를건너 벌판과 산길을 또 걸어간다.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 있다...’ 그를 대표하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은 이효석 자신의 고백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고개 둘을 넘고개울 하나를 건너 또 가야 하는, 70리 밤길과도 같은 막막한 그의삶은 어쩌면, 낙엽을 태울 때 나던개암과도 같은 커피향이 있었기에 그나마 견딜 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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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유미 2020-10-02 16:04:46
이효석님은 아내와 막내아들을 먼저보냈고 왕수복은 함경북도에서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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