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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32> 가까운 길을 택해 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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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32> 가까운 길을 택해 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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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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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숙소에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6시 40분경에 숙소를 나와 마을 출구 쪽으로 갔더니 갈림길이 나왔다. 사모스를 거쳐 사리아로 가는 비교적 평평 하지만 거리가 좀 먼 길과 산꼭대기에 있는 산실마을을 거쳐 가는 7km 정도 가까운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산길로 가는 길로나뉘었다. 우리는 산을 좀 오르더라도 가까운 길을 택해 걸었는데 생각보다 오르막이 길었다. 가이드북만 보고 이제 높은 언덕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길을 선택하는바람에 아침부터 등산을 하게됐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기 전에 마을 끄트머리 길가에 작은 경당처럼 생긴 오두막이 있는데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뭔가 하고 들여다 봤더니 화가인 듯한 초로의 남자가 특별한 세요를 그려주고 있었다. 직접 그린 엽서와 그림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엽서 한 장씩 사고순례자 여권을 내밀었더니 펜과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멋진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우리가 지난밤 머무른 이 마을의 동산 위로불그스레하게 아침이 밝아오는 하늘아래길을 떠나는 나의 모습을 그린 듯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해 산 중턱에 올랐을 즈음 잠시 쉬며 귤을 까먹고 있었는데 축지법을 쓰는 사나이가 지나가며 아침 식사는 했냐고 묻기에 안 했다고 하니 자기는 출발하기 전에 먹었다면서 앞으로 7~8킬로미터는 바가 없을 거라고 뭐라도 먹으며 걸으라고 했다. 어쩐지 여느 때와 달리 길에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먹을 데가 없으니 식사를 하느라고 늦게들 출발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마을에 바가 있는지 체크를 안 하고 출발하는 바람에 아침 대신 가방에 있던 과자를 먹거나 초콜렛, 사탕 등을 꺼내 먹으며 걸어야 했다. 두 시간쯤 걸었을 때 산밑의 마을에 다다랐는데 어느 허름한 건물 울타리 안에 사람들이 쉬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준비된 음식을 마음껏 먹고 내고 싶은 만큼 내고 가는 기부제라고 했다. 딸아이는 가지고 있던 동전들 모두 털어 넣고 빵이며 음료수 바나나 삶은 계란 등을 먹었는데 아침도 못 먹고 두 시간을 걸었기에 배가 몹시 고팠는데 참으로 감사한 장소였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나 두시간쯤 후에 길가의 바에 들어가 오렌지 쥬스 한잔씩 마시고 화장실도 해결하고 걷는데 머지 않은 곳에 사리아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리아부터 순례자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하여 각국의 단체 순례자들이나 스페인 학생들이 단체로 순례길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순례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하여 4킬로미터 더 가서 머무르기로 하고 사리아 시내 은행에 들러 약간의 현금을 인출하고 점심식사도 해결하기로 했다. 언덕길을 15분 정도 내려가 은행에서 돈을 찾고 사리아를 벗어나 나무 그늘이 뒤덮인 언덕길을 오르는 데 좀 힘에 겨웠다.

사리아 시내를 벗어나 고개를 하나 넘자 마을이 보였는데 마을 입구 바를 겸한 알베르게가 순례자들이 선호하는 곳이어서인지 손님이 많아 보였다. 길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자로부터 그 집이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라는 말을 듣고 마을 중심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오폼발이라는 사설 알베르게를 찾아 왔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주방도 있고 주변 잔디밭에 선탠할 수 있는 의자와 해먹도 있다. 칠십쯤 되었을 듯한 주인이 손님이 올까 봐 멀리 가지도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는데 저녁 7시가 지났는데 다른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샤워하고 빨래해 널고 좀 쉬다가 남은 쌀로 밥을 조금 해서 컵라면과 인스턴트우거지국을 끓여서 말아먹었더니몸이 따뜻해지면서 포만감이 느껴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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