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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신문사설/칼럼
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35>/ 라몬 카사스–골목 그리고 커피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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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8  08: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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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골목에서 완성된다. 광장이 문화의 얼개라면 골목은 문화의 속살이다. 거기엔 민초들의 애환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골목에서 나서 골목에서 자라고 골목을 드나들며 추억을 만든다.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뒷골목처럼, 골목 안 사람들의 삶 또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숨결이자 역사다. 파리를 ‘보고’ 싶으면 광장엘 가고 파리를 ‘알고’ 싶으면 골목엘 가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골목이야말로 도시의 민낯이자 정체성이다.
 
카페 4gats(콰트로 가츠)가 주목받는 건 이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뒷골목에 위치한 4gats는 투우만큼이나 매혹적인 스페인의 정체성이다. 젊은 시절, 피카소가 즐겨 찾았다는 이 카페는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 위치해 있다. 명품과 관광의 거리, 람블라스가 화려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면 4gats는 노파의 주름살과도 같은 넉넉함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4gats의 매혹은 무엇보다 은밀함에 있다. 작정한 사람들의 눈엔 좀처럼 띄지 않는, 길을 잃을 때쯤에야 나타나는 이 카페는 위치만큼이나 은밀한 역사를 담고 있다. 피카소가 생애 첫 전시회를 연 것도, 가우디가 독신의 외로움을 달랜 곳도, 1800년대 스페인 예술가들이 애환을 나눈 것도 모두 이 곳, 4gats에서였다. 그리고 거기 숨결처럼, 4gats를 세운 라몬 카사스의 삶이 있다.

피카소보다 15살 많은 카사스는, 피카소의 영원한 경쟁자였다. 피카소가 첫 전시회를 열 때 카사스는 이미 소묘의 일인자가 되어 있었고 카사스의 그늘에 가린 피카소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피카소가 파리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의 평가는 여전히 카사스 쪽으로 기울었고 피카소는 결국 스페인을 떠나야 했다. 역사는 피카소가 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스페인을 떠났다 전하지만 적잖은 미술사학자들은 카사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의지가 스페인을 떠나게 된 결정적 요인이라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카사스가 세상에 덜 알려진 건 4gats 때문일 것이다. 피카소가 그림에 몰두할 때 카사스는 그림보다 교류에 더 마음을 쏟았다. 파리의 카바레 ‘르 샤 누아르’ (Le Chat Noir. 검은 고양이)를 본떠 만든 4gats(4마리 고양이)는 스페인 예술을 끌어올리려는 그 나름의 노력이었다. ‘혼자’ 보다 ‘함께’ 걷는 길을 택한 그에겐 파리의 카페와도 같은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필요했고 ‘르 샤 누아르’의 웨이터였던 페레로 메우와 함께 그 꿈을 이뤄낸 것이다. 1903년 재정 위기로 문을 닫을 때까지 4gats는 스페인 모더니즘의 거점이자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고 좁고 어두운 골목에 커피향을 피워올린 거리의 사랑방이었다.

1989년 재개장한 4gats는 카사스의 그림과 함께 스페인 문화의 속살이 되어가고 있다. 4gats가 위대한 건 120여 년을 거슬러온 역사 때문일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의 주인공이 시공을 넘어 피카소를 만나듯, 4gats의 관광객 또한 한 세기 너머 카사스를 만날 수 있다. 4gats를 대표하는 커피, 꼬르따도가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건 한 잔의 커피 속에 담긴 카사스의 열정, 그리고 숨결과도 같은 골목의 속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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