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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20>/ 대평원서 바람에 날려달라던 소망을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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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20>/ 대평원서 바람에 날려달라던 소망을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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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07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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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홍성읍 남장리>
 

아침 7시, 산타마리아알베르게에서 출발하여 마을을 빠져나와 말 그대로 대평원 길을 걸었다. 기온이 초겨울 날씨처럼 추워 자켓 속에 패딩을 입고 걸었는데 아침 해가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낼 때까지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17km를 마을하나 없이 직선으로 난 비 포장길을 걸었는데 그동안은 평원이라 해도 아주 멀리 지평선 너머로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따라오고 더러는 마을도 보이는 길이었는데 오늘은 오전 내내 밀밭과 이따금 나무 한그루씩 서있는 들판이었다. 그나마 길가에 핀 노란 유채꽃 닮은 야생화가 심심함을 달래주었다.

까리온을 떠난 지 세 시간쯤 되었을 때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없는 지평선이 보이고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도 적당하고 가까이에 지나가는 순례자들도 없기에 딸아이보고 아빠 지금 보내 주자고 했더니 딸아이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가방 맨 위 주머니에  보관하고 다니던 작은 유리병을 꺼내어 딸아이의 손에 한줌 쏟아주고 나머지는 내 손에 쏟아 바람의 방향을 따라 길가에 뿌렸더니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따라 훨훨 잘 날아 갔다. 순례길에서 대평원을 만나면 바람에 날려달라던 그의 소망을 그렇게 이루어 주었는데 그는 하늘에서 알고 있을까. 왜 하필 이 곳에 뿌려주길 원했을까.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 지형이 움푹 파인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바로 눈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입구의 바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는데 갑자기 하늘의 구름이 짙어지면서 비가 내리고 바람도 심해지고 지형도 그가 말했던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약간의 언덕과 숲이 있는 길이어서 아까 그 지점에서 아빠를 보내주길 정말 잘했다고 딸아이도 나도 말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반쯤 더 걸어 오늘의 목적지 테라디오스에 도착하여 마을 안쪽에 위치한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와 2층 8인실에 배정받았는데 우연인지 알베르게 주인의 의도인지 7명이 한국인이고 맨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만 백인 아가씨였다. 까미노 둘째 날부터 길에서 만나거나 같은 숙소에서 지내고는 했던 용인에서 오신 요셉 요세피나님 부부도 같은 방에 배정받았다.

여섯시에 저녁 식사하러 식당으로 갔더니 혼자 온 한국 젊은이들과 일본인 한사람이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오후 세시쯤부터 계속 둘러 앉아 시끌벅적 했다. 요셉 요세피나님 부부와 합석해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는데 돼지고기, 야채샐러드, 쌀밥, 미트볼요리를 시켰는데 돼지고기가 기름기 하나 없는 엉덩이 살임에도 그리 퍽퍽하지 않아 먹을 만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요셉님은 쉬어야겠다고 방으로 가시고 식사에 곁들여 나온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까미노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우리는 아빠가 보내줘서 오게 되었다고 하니 어제 산타마리아의 프로그램에서 딸아이가 했던 이야기를 놓치신 듯 아빠가 현직에 계셔서 보내 주셨나보다고 말씀하시기에 아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으시며 끝내 눈물을 보이시더니 진작 말하지 그랬느냐며 기도하시겠다고 말씀 하셨다. 숙소에 들어와 요셉님께 이야기하신 듯 요셉님께서도 이제부터 홀가분하게 걸으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내 마음도 눈물은 나지만 밀린 숙제를 해낸듯해서 마음은 홀가분하다.

▲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샤워하고 패딩점퍼까지 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있어도 추운 기운이 가시질 않더니 밥을 먹고 와인을 마신 덕분인지 몸이 따뜻해져서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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