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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11>/ 순례자들에게 잘 알려진 스타 청설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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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11>/ 순례자들에게 잘 알려진 스타 청설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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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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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홍성읍 남장리>
▲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로그뇨르의 무니시팔에서 아침 6시 반에 출발하여 어제 짐 찾으러 갔던 호스텔에 가서 짐을 맡기고 앞에 벌써 출발하여 걷는 사람을 따라 걸었다. 길을 걷다가 화살표나 조개껍질 표시를 찾느라 머뭇거리고 있으면 지나가던 시민들이 방향을 알려주며 부엔까미노라고 응원해 주었다.

파리에서부터 느낀 건데 이곳은 도로에서 교차로나 아주 넓은 구간을 제외하고는 교통 신호등을 보기 어렵다. 대신 횡단보도에서 또는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도 길을 건너려고 서 있으면 아무리 바쁘고 뒤에 차가 밀려있더라도 보행자를 먼저 보내고 간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더욱이 뒤에 줄지어 서있는 차들도 경적을 울려대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그러니까 보행자가 없을 때는 신호대기 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흐름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도시를 빠져나가는데 거의 한 시간가량 걸리는 걸로 보아 꽤 큰 도시였는데 도시주변에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고 구도심 외곽 쪽으로 신도시가 넓게 조성된 걸로 보아 산업이 발달하면서 최근에 성장한 도시인 듯 보였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저수지 옆에 캠핑하기 좋은 공원이 있었는데 나무에서 청설모 한마리가 쪼르르 내려오더니 내 앞으로 직진해 달려왔다. 딸아이보고 이것 좀 보라고 불렀는데 이 녀석 도망도 안가고 온갖 재롱을 떨고 있는데 딸아이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너무 신기해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까하다 야생동물이라서 혹시 물리기라도 할까 염려되어 가만히 바라만 보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과자부스러기 하나도 안 나와 실망했는지 뒤에 오는 이들에게 달려갔다. 나중에 까미노 블로그에서 그 녀석 사진을 발견했는데 이미 순례자들에게 잘 알려진 스타였나 보다.

로그로뇨를 빠져나와 시골길로 들어서니 처음부터 끝까지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의 연속이었는데 어제까지 보았던 평화로운 푸른 초원의 느낌이 아니라 포도나무 새순이 나오지 않아 아직도 봄이 오지 않은 삭막한 느낌이었다. 왜 같은 구릉지대인데 이곳은 포도농사만 지을까 생각하다가 밭을 보니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어른 주먹보다 큰 정도의 자갈이 빼곡해서 밀농사 짓기에는 적당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마을이 나타나면 그 주변에 커다란 와이너리가 보이곤 했다.

오늘은 무릎은 아프지 않은데 발가락이 아파서 좀 힘들었는데 도중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신 노부부를 만났다. 그곳에서도 열한시간반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셨다는 것과 이 길에 한국인들이 정말 많다는 것, 자기가 사는 동네 이웃에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것 등을 말씀하셨는데 도중에 힘들어서 빨리는 못 걷겠다고 앞서가라고 하셨다.  이 길에서 8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노인들을 자주 만나는데 그 중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오신 캐시할머니가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데 벌써 여섯 번째 까미노를 걷고 계신다고 하셨고 캐나다에서 오신 할머니 두분과 할아버지 한분은 우리보다 한참 뒤에 걸으시는걸 보았는데 어쩌다 보면 우리 앞을 추월해 가셔서 젊은이를 부끄럽게 하곤 하셨는데 오늘로 세 번째 같은 숙소를 쓰고 계신다.

시골길을 걷다보면 간혹 길가에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십자가를 만나고는 하는데 누군가 가져다 놓은 꽃이 놓여 있기도 하고 고인의 모습인 듯한 사진이 놓여 있기도 했는데 까미노중에 더러 사망하는 이가 있어 마을에서 장례를 모셔 주고 길에 추모의 십자가를 세워준다고 들었다.

길을 걸으면서 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길이 있음에도 이곳에 오고 싶어 할까 생각해 보았다.

9세기부터 순례가 시작되었다는 까미노.

그냥 이 길이 좋아서 오는 사람도 많고 뭔가 삶이 복잡해서 머리를 식히려고 오는 사람, 앞으로의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위해 걷는 젊은 친구,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그를 떠나보내려 걷는 사람, 그리고 이 길이 원래 지니고 있는 의미인 종교적 신념으로 걷는 이도 있다.

이 곳 나헤라에 들어오는 입구에서 작은 유적지를 보았는데 순례자들을 치료해 주던 순례자병원이었다고 했다. 바로 인프라였다.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지나 마을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다. 그러나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 10~20유로에 더운 물로 샤워하고 빨래하고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며 여행할 수 있는 나라는 이 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만큼은 아니겠지만 이곳에서는 저렴한 값에 의식주해결은 물론 질병까지도 치료해 줄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마을을 들르지 않는 바람에 점심을 거르고 계속 걸었는데 아직 한시도 안됐는데 구글맵에 나헤라까지 4키로미터밖에 안남은 걸로 나와 설마하고 믿지 않았는데 목적지까지 도착했는데 두시밖에 안된 이른 시간이었다.

아침에 보낸 짐도 잘 도착해 있었고 알베르게 체크인 후 오는 길에 보아둔 한국순례자들에게 유명하다는 중국음식점에서 씨에스타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고 중간에 있는 대형마트에 들러 먹거리를 사가지고 숙소에 들어와 씻고 빨래를 빨아 널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일정은 20킬로미터정도만 걸어도 돼서 짐을 전부 지고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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