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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4>/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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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4>/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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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1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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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홍성읍 남장리>
▲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올라! 부엔까미노. 순례자들이 길을 걷다가 만나면 나누는 인사말이다.

밤새 뒤척이다 여섯시가 되니 사람들이 길 떠날 채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우리는 아침식사 예약이 7시에 되어 있어서 천천히 짐을 챙겨 짊어지고 나왔다.

론세스바예스가 비교적 큰 마을인줄 알았는데 날이 밝아서 둘러보니 심심산골에 오로지 이 시설 하나였다. 오늘은 어제 갔던 건물이 아니고 다른 건물이었는데 간단하게 오렌지 쥬스 한잔과 길게 썰어 바삭하게 구운 식빵 한 조각과 커피 한잔이 전부였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고 우리는 대략 요기가 되었는데 바욘역에서 만났던 남자는 배가 고프다 했다.

식사가 끝나고 7시20분에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최근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질퍽거리기는 했지만 평평한 숲길이어서 8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숲길을 한참 걷다가 숲을 벗어나면 윈도우 바탕화면이 연상되는 초원위에 소나 말 또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오래된 성당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마을의 집들은 프랑스의 집들처럼 예쁜 주황색 기와지붕에 벽면이 흰색이나 노르스름한 미색 페인트가 칠해지고 창문에는 나무 덧문이 달린 고풍스러운 집들이었는데 대문위에 돌로 새겨진 문장이 붙어있거나 건축년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 역사가 이백년 이상 된 집이 많고 집 앞면을 그대로 두고 나머지 부분을 새로 짓거나 새로운 집도 옛날 양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어서 마을이 정돈된 느낌이고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프랑스의 집들이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라면 여기 스페인의 집들은 비교적 단순하고 중후해 보여서 남성적인 느낌이 들었다. 반복해서 예쁜 마을과 목장이 이어지다가 어느 마을 입구에 자리한 카페에 순례자들이 모여 있기에 우리도  커피와 샌드위치 그리고 감자와 양파가 듬뿍 들어간 계란 오믈렛(이곳에서는 또띠야라고 했다.)을 주문했는데 양도 충분하고 맛도 괜찮았다. 식사 후 화장실에 들렀다가 순례자 여권에 스템프를 찍고 나오는데 카페 안에 마을의 남자 어르신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계셨는데 마을 주민을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카페를 나와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걷는데 길바닥에 양의 똥이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비도 그치고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가는 목장의 풍경이 예술이었는데 낭만이 넘치는 전원의 평화로운 풍경은 거기까지였다.

이끼 낀 숲길을 따라 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길은 질퍽해서 미끄럽고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날것처럼 마을하나 보이지 않는 길이 계속되고 배낭을 멘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더러는 순례자들이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 숲길을 끝없이 걸어야 했다.

배낭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나무숲사이로 산 아래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니 없던 힘이 솟아올라 씩씩하게 걸었다.

마을을 들어가는 입구에 우렁찬 소리를 내며 굽이쳐 흐르는 작은 강물 위로 예쁜 다리가 있는데 바로 옆에 이 곳 수비리에서 가장 일찍 손님들이 채워지고 시설이나 서비스가 가장 좋다고 소문난 알베르게가 있어 들어갔는데 운이 좋게도 아직 빈 침대가 남아있어서 인당 15유로를 지불하고 짐을 풀었다.

샤워하고 빨래 몇 가지 빨아서 널고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 사다가 챙겨간 김치통조림 넣고 끓인 찌개와 친구가 챙겨준 누룽지 끓여서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토요일이어서인지 시에스타때문인지 정육점이 문을 닫았다.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있고 마을도 예뻐서 천천히 구경하다 순례자들이 많이 앉아있는 까페에서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곁들인 갈비찜 비슷한 고기요리와 야채빠예야를 주문했는데 부드럽게 푹 익은 갈비와 우리나라 볶음밥느낌의 밥이 어우러져 아주 맛있었다.

식사 후 천천히 숙소로 돌아와 배낭끈에 시달려 통증이 심한 어깨에 파스 붙이고 딸아이는 내일 아침 동키서비스를 알아보려 알베르게 주인을 만나러 나갔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아파서 저녁 6시부터 잠자리에 들었다가 깨어보니 겨우 11시밖에 안되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앉았는데 다섯 시간 잤다고 그래도 통증이 많이 가셨다. 화장실에서 온기가 느껴져 살펴보니 벽면에 설치된 라지에이터가 따끈한 게 빨래를 널면 잘 마를 것 같아 2층 주방 난로 앞에 널어둔 빨래를 가지러 올라갔더니 주인아저씨가 오래된 팝송을 들으며 손님들을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난로는 꺼져있고 빨래는 아직도 물을 짜면 나올 만큼 젖어있었다.

빨래를 라지에이터에 널어놓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다시 올 것 같지 않은데 와이파이가 약해서 스마트폰 가지고 놀기도 그렇고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조용한데 창밖에서는 강물이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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