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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최이섭 대한시각장애인골프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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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최이섭 대한시각장애인골프협회장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8.07.06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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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겉모습만으로는 그의 장애를 짐작하기 어렵다. 표정도 밝다. 한쪽 눈에만 미약하게 남아있는 잔존시력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최이섭<사진> 대한시각장애인골프협회장을 만났다.

홍동초, 홍성중, 홍성고 졸업

홍동면 구정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최이섭 회장은 홍동초(39회), 홍성중(16회), 홍성고(24회), 인하공대 토목과, 연세대 토목대학원을 졸업했다. 

“25년 전 시각장애인이 된 뒤로 친구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몇 년 전 홍성중학교 3학년 1반 친구들이 경주로 회상여행 간다는 말을 전해듣고도 선뜻 나서지 못했죠. 약소한 찬조금으로 마음이나마 함께했지만요. 내내 ‘눈팅’만 해오던 동기 단톡방에서 골프 덕분에 처음으로 용기 내어 말을 걸었는데, 따뜻하게 손 내밀어준 친구들이 참 고마워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떠났던 경주 수학여행은 지금도 생생하다.

“집이 먼 저는 읍내 사는 친구 동호, 동진이네 집에서 하루 전날 묵었어요. 남들보다 하루 더 합법적으로 놀게 돼 어찌나 신났는지 몰라요.(웃음) 쌍둥이 친구들과 밤새 할 얘기는 또 얼마나 많던지!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 경주에서 첨성대, 탑, 고분 등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눈과 가슴에 꼭꼭 새겼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송두리째 바뀐 삶

최이섭 회장은 한쪽 눈의 잔존시력이 미약하게 남아 있는 ‘약시’ 시각장애인이다.

“40대 초반에 망막 혈관 출혈과 박리가 생겼어요. 원인은 끝내 못 밝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로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젊었을 때 공장 설계하는 일을 했어요. 사회 기반공사가 한창 이루어지던 때라, 울산 여수 구미 등등 전국 공장을 누비고 살았죠.”

시각장애인이 되고 자연스럽게 퇴사 수순을 밟은 뒤, 작은 회사를 만들었다. 1995년 그가 설립한 홍인테크주식회사는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이다. 고도의 기술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회사를 키워 2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링 전문기업 설립

“회사를 설립하면서 딱 세 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두 번째는 절대로 임금체불은 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주위에 손 벌리지 않겠다는 거였죠. 작은 회사지만 그 다짐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요. IMF 땐 인원을 좀 줄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 경험을 공부 삼아 2008년 금융위기 땐 한층 수월하게 극복했죠. 풍파도 많았지만, 그게 인생 아니겠어요?”

경영진에게 직원들을 맡기고 6년 전 정년을 맞아 계획대로 홀연히 회사를 나왔다. 탄탄한 회사를 일궈준 임직원과 거래처, 협력업체 사람들이 그저 감사하다는 최이섭 회장은 “다음 임무는 그 모든 고마운 분들과 사회에 도리를 다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대한시각장애인골프협회 회장 취임

사단법인 대한시각장애인골프협회(KBGA)는 수도권 지역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로 만들어진 단체다. 스포츠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활동 폭을 넓히고 사회의 편견을 줄여나가는 일을 한다. 최이섭 회장은 올해 1월 1일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임기는 3년이다.

“부상의 위험이 적고 비장애인과도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골프는 시각장애인에게 더없이 좋은 스포츠입니다. 다만, 앞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공을 칠 수 있어요. 필드에 나가려면 2명의 선수와 2명의 서포터가 있어야 하는 만큼 비용도 2배로 들죠. 또, 골프장 사정에 따라 입장이 제한될 수도 있어, 시각장애인이 골프 스포츠에 입문하기란 열악한 실정입니다.”

9일 현대더링스CC서 시각장애인골프대회 개최

(사)대한시각장애인골프협회는 9일(월) 태안군 소재 현대더링스CC에서 시각장애인골프대회를 개최한다.

“현대더링스CC를 비롯해 모두투어, 아트뷰, 토니모리, 지나뉴욕 등에서 후원해주신 덕분에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고향 광천조양식품에서도 광천김을 협찬해주셨죠. 저는 더 이상 제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들이 보는 걸 못 보긴 하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해줬으니까요. 제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던 건 함께 속도를 맞춰 걸어주고 기꺼이 손 내밀어준 사람들 덕분이었어요. 더불어 사는 세상, 시각장애인이 골프를 통해 운동과 재활에 나설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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