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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계룡산 남매 탑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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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계룡산 남매 탑에 얽힌 사연’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07.02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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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연, 남매의 연으로 맺어 탑에 깃들다’
▲ 남매탑 모습.

계룡산(鷄龍山)은 해발 845m이며 대전광역시와 공주시·계룡시·논산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의 능선과 봉우리가 닭의 볏을 쓴 용과 같아서 계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계룡산은 삼국 시대부터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며, 조선 시대 초기에는 새로운 도읍이 들어설 예정지로 꼽히기도 했다. 또한 산기슭 곳곳에는 다양한 토속신앙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계룡산의 많은 등산로 중에는 동학사와 갑사로 넘나드는 등산로가 있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등산로를 따라 3㎞ 쯤 올라가다 보면 삼불봉 아래쪽에 남매탑이라고 부르는 5층 석탑과 7층 석탑이 서있다.

남매탑이 서있는 곳은 옛날에 청량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절은 폐사되었고 두 기의 탑과 함께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때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신사시대에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치열하게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겨울에 토굴 속에서 수행에 몰두하던 스님은 산을 울리는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스님은 깜짝 놀라서 토굴 밖으로 나와 보았다.

“어흥! 어흐흥!”

호랑이가 토굴 밖에서 신음 하며 입을 딱 벌리고 앉아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몸이 불편한 모습이었다. 스님이 자세히 살펴보니 호랑이의 목구멍에 커다란 가시 하나가 박혀 있었다.

“오호, 이 가시가 너를 힘들게 했구나.”

스님은 호랑이의 입속에 손을 넣어 가시를 꺼내주었다. 호랑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산속으로 사라졌다.

며칠 후였다. 토굴 속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호랑이의 포효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울부짖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누군가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이 녀석이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스님은 호랑이 소리가 들리는 토굴 밖으로 나와 보았다.

“아아니? 이건 사람 아닌가?”

호랑이의 등에는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정신을 잃고 업혀 있었다. 호랑이는 스님이 나타나자 여인을 내려놓고 쏜살같이 산속으로 사라졌다.

스님은 부랴부랴 여인을 토굴 속으로 옮기고 정성껏 간호했다. 한눈에 보아도 평범한 집안의 여인은 아닌 듯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여인은 정신이 돌아왔다.

“이게 어찌된 사연입니까?”

스님은 정신이 돌아온 여인에게 자세한 사연을 물었다.

“저는 경상도 상주에 사는 사람입니다. 결혼 첫날밤에 호랑이에게 물려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앞뒤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허허, 호랑이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했구나.’

▲ 남매탑 전설 안내판.

스님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호랑이는 자신의 입속에 가시를 꺼내준 보답으로 여인을 산속까지 납치해온 것이었다. 토굴 속에서 혼자 수행하는 스님의 외로움을 덜어주고자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당장 여인을 산 아래로 데려다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겨울 엄동설한에 산길이 눈에 막혀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스님은 수도승으로서 여인을 가까이 할 수 없는 몸이었다. 토굴 속에서 함께 지내기는 했지만 무사히 겨울을 넘겼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오자 여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여인의 친정에서는 자세한 사연을 전해 들었지만 시댁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한겨울동안 다른 남자와 함께 지낸 딸을 시댁에서 선선히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배필을 찾아서 재혼을 시킬 수도 없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며 인연 같습니다. 스님께서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십시오.”

여인의 부모는 스님에게 부부로 살기를 부탁했다. 스님은 부모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승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탁이었다.

스님은 고심 끝에 부모의 부탁을 승낙했다. 부부의 인연이 아니라 남매의 인연을 맺겠다는 승낙이었다.

이렇게 하여 스님은 처녀와 남매의 인연을 맺고 다시 산으로 들어왔다. 스님은 비구스님으로 열심히 불도를 닦았고, 여인은 비구니가 되어 여승으로서 불도를 닦는데 전념했다.

 남매가 된 스님과 여인은 평생동안 열심히 불도를 닦다가 한날 한시에 똑같이 열반에 들어갔다. 절에서는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탑을 건립하여 두 남매의 사리를 모셨다.

이후 두 탑은 ‘남매탑’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전설과 함께 오가는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두 탑은 백제시대의 영향을 받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5층 석탑은 보물 제 1284호이며 7층 석탑은 보물 제 128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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