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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장곡면 오성리 질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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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장곡면 오성리 질마재’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06.25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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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선비와 암행어사
▲ 오성리 모습.

우리고장 홍성군 장곡면 오성리에 질마재라고 부르는 고개가 있다. 옛 시절에 보령과 청양에서 오서산을 넘어 광천으로 통하던 고개였다. 낮에는 광천 장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지만 밤에는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무서운 산고개였다. 

옛날 오성리 질마재 고개 아래에는 천성적으로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선비가 살았다. 선비는 날이 저물어 당황하는 나그네를 발견하면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재워 보내곤 했다. 그렇다고 선비의 가정사정이 남에게 양식을 나눠줄 만큼 넉넉한 살림살이도 아니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는 매우 어려운 살림이었다.

그런데도 선비는 매일매일 길 가는 나그네를 집안으로 데려왔다. 착한 부인은 두말 않고 나그네를 정성껏 대접하여 보내곤 했다. 선비 부부 얘기는 입소문을 타고 잘마재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이날도 선비는 해가 떨어질 무렵에 고개 아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때마침 남루하게 차려입은 나그네 한 명이 고개 넘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갔다.

“날이 저무는데 어디까지 가시는지요?” “오서산 넘어 청양까지 가야 하는데 날이 저물어서 걱정입니다. 이 부근에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선비가 한 분 사신다고 하여 찾아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려는 중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저희 집으로 가십시다” 선비는 나그네를 집으로 안내했다.

이날 부인은 양식이 떨어져서 나그네를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난감했다. 조상 제사에 쓰려고 남겨놓은 양식을 꺼내어 저녁과 이튿날 아침밥을 지어 대접했다.

이튿날 아침을 얻어먹은 나그네는 길을 떠나려고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새벽부터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길을 떠나시겠습니까? 비가 그칠 때까지 그냥 계십시오” 선비는 나그네의 옷자락을 붙잡고 주저 앉혔다.

부인은 당장 점심거리가 없어서 걱정이었다. 남편이 대문 밖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 같았다. 부인은 화장실 문 앞에 가서 남편에게 형편을 얘기했다.

“여보. 어제저녁과 오늘 아침은 아버님 제사에 쓰려고 아껴두었던 보리쌀로 겨우겨우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당장 점심거리가 없는데 손님을 한없이 붙잡고 있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부인은 투정 비슷하게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 질마재 고개.

화장실에 앉아있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나그네였다. 나그네는 화장실에 앉아서 부인의 하소연을 듣고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쥐 죽은 듯이 앉아있었다. 잠깐 후에 부인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살며시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으로 들어온 나그네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사실 나그네는 어명을 받고 지방으로 민정시찰을 나온 암행어사였다. 암행어사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선비 집안을 도와주고 싶었다.
나그네는 부인이 차려준 점심까지 얻어먹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양식이 떨어진 집에서 점심상을 어떻게 차렸는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맙고 미안하기만 했다. 나그네는 비가 그치자 선비 집에서 나오며 부인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부인, 혹시 내일 중에 관아에서 부인을 부를 것입니다. 그때 내가 부인을 사촌여동생이라고 소개하며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부인은 나를 사촌오빠라고 반갑게 인사만 하면 됩니다” 나그네는 한마디 말은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이튿날 관아에서 부인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부인은 나그네가 한 말을 생각하며 관아로 갔다. 관아 동헌마루에 앉아있던 나그네가 버선발로 반갑게 뛰어오면서 부인을 맞이했다.

“하이고, 동생. 이게 얼마만인가?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내가 이곳을 지나다가 동생이 보고 싶어서 잠깐 불렀네” 나그네는 부인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네, 오라버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렇게 만나 뵈어서 너무도 반갑습니다”

부인도 천연덕스럽게 두 손을 맞잡으며 인사 했다.

민정시찰을 나온 암행어사가 선비부인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암행어사가 관아에 머물며 탐관오리는 물론이고 지역 세력가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암행어사 출두소식에 지역에서는 바짝 긴장했다. 그동안 자신의 세력을 이용하여 몹쓸 짓을 일삼던 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선비 부인이 암행어사의 사촌여동생이라는 소문을 듣고 하나둘씩 질마재 고개를 넘어왔다. 사촌오빠에게 얘기 좀 잘해 달라고 부탁하며 짐 보따리를 하나씩 놓고 갔다. 짐 보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뇌물이었다. 암행어사가 머무는 동안에 선비 집에는 갖가지 뇌물들이 쌓여 갔다.

며칠 후에 암행어사는 고을 원님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길을 떠났다.

이후로 질마재 고개에 살던 선비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길 가던 나그네에게 덕을 베풀던 선비를 위해 암행어사가 남모르게 도와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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