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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두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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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두우사’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02.19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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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우사의 유래가 된 “그대로 두어라”
▲ 두우사 미륵삼존불상.

우리고장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두우사(杜宇寺)라는 개인사찰이 있다. 두우사라는 사찰 이름도 특이하지만, 사찰이름의 유래도 재미있게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두우사 미륵전에 모셔진 미륵삼존불은 일반 사찰처럼 잘 다듬어지고 세련된 불상이 아니다. 돌로 제작되었으며 아마도 옛날부터 민간신앙 차원에서 모셔지던 것으로 생각된다.

두우사를 짓고 관리하는 사찰 주인은 올해 70세인 강씨이다. 이곳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 때부터 3대 째 미륵삼존불을 모셔왔다고 한다. 옛날에는 삼존불 위에 비 가림 정도의 가건물이었던 것을, 20여 년 전에 미륵전을 짓고 봉안했다고 한다.

두우사의 주인 강씨가 전하는 사찰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서산시 부석면 월계리에 사는 밀양박씨가 가야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었다고 한다. 밀양박씨는 가야산 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미륵불을 발견했다.

박씨는 미륵불을 자신이 살고 있는 월계리 마을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한 운반기구가 없으므로 가야산의 칡넝쿨을 끊어서 멜빵을 만들어 등에 메고 산에서 내려왔다.

박씨는 미륵불이 너무도 무거우므로 중간중간 쉬면서 이곳 인지면 애정리까지 왔다. 이제 산 하나만 넘으면 자신이 사는 마을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쉬겠다는 생각으로, 이곳 은행나무 아래에 미륵불을 내려놓고 잠깐 쉬었다.

박씨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미륵불을 등에 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허!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미륵불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있었다.

가야산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미륵불이 무겁기는 했지만 등에 짊어지고 오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에는 미륵불이 꼼짝달싹 안하는 것이었다.

박씨는 한참동안 미륵불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이렇게 미륵불을 등에 메려고 실랑이를 벌이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두어라.”

박씨는 깜짝 놀라서 등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고 미륵불만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그거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구먼. 내가 잘못 들었나?’

박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미륵불을 등에 메고 일어났다. 역시 미륵불은 꼼짝달싹 안했다. 그리고 또다시 똑같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로 두어라.”

박씨가 다시 등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미륵불만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미륵불에서 나는 소리였다.

박씨는 깜짝 놀라서 더 이상 미륵불을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륵불을 그 자리에 놓아두고 마을로 돌아갔다.

박씨와 미륵불의 소문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 뒤로 이곳 은행나무 아래에 미륵불을 놓아두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소원을 비는 영험한 장소가 되었다. 자식 없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자손을 얻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 미륵전.

옛날에는 이곳에 작은 절을 짓고 스님이 거주했다고 한다. 절 이름도 “그대로 두어라”는 뜻으로, ‘두어절’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발음이 변하여 ‘두우사’로 부르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뒷절’이라고도 부른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에는, 두우사의 처음 세워진 시기가 1780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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