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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2주년 특집> 결성면 나무·비석·꽃들이 증언하는 압제와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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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2주년 특집> 결성면 나무·비석·꽃들이 증언하는 압제와 해방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7.08.10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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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 고향인 결성면의 나무와 비석이 일제시대 민족 수난의 아픔을 증언하며 지역 내 도로가 무궁화로 덮혀있어 항일독립운동의 성지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 소나무 송진을 받은 상처.

결성동헌 뒤 석당산에는 일제 강점기 송진 채취의 아픈 상처를 안고 70년 넘게 살고있는 소나무 100여 그루가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을 후손들에게 웅변으로 전하고 있다. 소나무 아랫부분에 큰 나무는 1m 높이 50cm 폭으로 껍질을 베껴내고 V자 형으로 칼질해 흘러내리는 송진을 받은 자리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2월 이같은 일제시대 소나무 피해를 조사해 전국 분포도를 작성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산림과학원은 당시 안면도, 해인사 홍유동 계곡, 제천 박달재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안면도와 가까운 결성면의 대규모 흔적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일본은 2차대전 말기인 1941년에서 45년에 전투기 기름을 만들겠다며 한반도 전역에서 학생들까지 동원해 소나무 송진을 긁어갔다. 송진을 끓여서 만든 기름 약 3000배럴을 최후의 자살공격용으로 비축했으나 종전 후 미군이 실험한 결과 비행기 연료로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 황국신민서사지주비

일본 주재소로 사용했던 결성형방청 뒤뜰에는 600년 된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집 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한다는 행운의 나무로 여겨 매년 단오날 주민들이 신목제를 지낸다. 일제시대 야마구찌 순사가 이 나무 가지를 잘랐다가 벙어리가 돼 근무를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항일목’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군국주의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석당산 아래에 신사를 짓고 비를 세워 참배를 강요했다. 황국신민서사지주비(皇國臣民誓詞之柱)라고 새겨있는 이 비석은 광복 이후 주민들에 의해 철거돼 땅 속에 묻혔으나 결성면에서 2005년 5월23일 독립기념관에 연구자료로 기증했다. 비석은 높이가 2m10cm, 넓이가 60cm, 폭이 35cm로 사람 키보다 크다.

결성면내 4개 군도 15km 양쪽에는 요즘 무궁화꽃이 활작 피어 독립운동 지역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결성면 소재지인 읍내리에서 박철마을 한용운 생가~갈산면 김좌진 장군 생가로 이어지는 군도 2호선과 읍내리에서 은하쪽 군도 8호선, 두 도로에서 갈라지는 군도 2호선, 13호선 도로변이 모두 무궁화꽃으로 장식돼 있다. 한편 충남도는 지난 8일 산림청이 주관하는 나라꽃 무궁화 전국 축제 우수분화 품평회 및 단체부분에서 대상을 차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 만해의 고향 결성면내 15km 4개 군도변에 무궁화가 만개해 있다.

안기억 결성면장은 석당산을 중심으로 결성면 유적지를 답사하고 모아 ‘역사가 살아있는 길 따라’라는 홍보 책자를 만들었다. 안 면장은 “둘레가 1550m 성곽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결성읍성을 중심으로 역사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며 시간이 허락되면 ‘석당산 가는길’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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