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서산마애삼존불
상태바
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서산마애삼존불
  • 김정헌<동화작가·구항초등학교장>
  • 승인 2017.03.20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위에 새겨 넣은 ‘백제의 미소’ 감탄

▲ 활짝 웃고있는 마애삼존불.
우리고장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계곡에 국보 제84호이며 일명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는 백제시대의 걸작품 마애삼존불이 있다. 서산시 용현계곡 가야산 줄기 강댕이골 바위 절벽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은, 산 아래 계곡에서 5분여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계곡에 설치된 출렁다리를 지나고 숨 가쁘게 산언덕을 올라가서 마애삼존불을 만나는 순간, 가쁜 숨이 탁 멈춰지고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차디차고 무뚝뚝한 바위 절벽에 붙어있는 세 명의 남녀가 온기 넘치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낯선 사람을 반겨주고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바위 절벽에 꽁꽁 갇혀 있다가 지금 막 사람으로 환생하여 기쁨에 넘친 모습으로 서있는 듯하다.

도대체 백제의 석공들은 돌을 다루는 솜씨가 얼마나 뛰어났기에 저렇게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인간미가 물씬 풍겨나는 얼굴 표정과 여유롭고 잔잔하게 흘러넘치는 밝은 미소는 도저히 바위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바위 절벽을 갈고 다듬고 깎아내어 생명을 불어넣고 사람으로 환생시켜놓은 저 기가 막힌 솜씨에 입이 딱 벌이질 뿐이다. 백제시대 석공의 지극한 불심과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는 신기에 가까운 예술혼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 동안 강댕이골 산속에 숨어있던 서산 마애삼존불은 1959년에 세상에 알려졌다. 미술학자이며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 선생에 의해 그 아름다운 미소가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홍사준 선생은 이웃에 있는 보원사지를 발굴하던 중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나무를 하던 마을 나무꾼이 산속 바위벽에 웃고 있는 산신령이 여인들과 함께 새겨져 있다고 알려준 것이다.

홍사준 선생은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고 백제미술의 최고 걸작품인 마애삼존불을 만나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1500여년 세월동안 산속에 묻혀있던 백제의 미소가 세상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계기이다.

마을사람들은 옛날부터 마애삼존불에 관해 재미있는 해석을 해왔다고 한다. 가야산 산신령이 가운데 서서 웃고 있는데 작은 부인이 다리를 포개고 앉아서 볼에 손을 대고 “용용, 약오리지?” 하며 놀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편에 서있는 큰 부인이 약이 올라서 손에 돌을 들고 서있다는 소박하고 해학적인 해석을 해왔다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은 바위 윗부분이 지붕처럼 앞으로 돌출되어 있어서 자연적인 감실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삼존불의 얼굴 전체에 잔잔하며 여유로운 미소가 흘러넘치고 있으며 몸을 감싸고 있는 옷자락 주름 하나하나마다 표현이 사실적이고 세밀하다.

▲ 마애삼존불과 주변 모습.
마애삼존불은 뛰어난 조각솜씨와 함께 햇빛을 받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웃는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지도록 표현된 솜씨가 감탄을 자아낸다. 아침 무렵에는 젊은이의 싱싱한 미소이며 점심 무렵에는 중년의 중후한 미소로 변하며 저녁노을 무렵에는 세상을 달관한 노년의 인자한 미소로 바뀐다고 한다. 석질이 단단한 화강암을 어떻게 저토록 자유자재로 깎고 다듬어서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동안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가 사라진 적도 있었다. 1965년에 풍화방지를 위해 보호각을 설치한 후부터였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취지였지만, 보호각이 햇빛을 차단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던 백제의 아름다운 미소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결국 2006년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서 보호각을 철거하면서 무려 42년 만에 백제의 미소를 다시 찾게 되었다.

마애삼존불은 하마터면 일제강점기에 세상에서 사라질 뻔한 아픈 상처도 갖고 있다. 가운데 여래입상의 광배 위쪽과 발 아래쪽에는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뚫려있다. 일본인들이 마애삼존불을 바위에서 때내어 일본으로 반출하려 했던 흔적이라고 한다. 일제의 만행이 미수로 그쳤기에 망정이지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고 속상한 일이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우리나라의 마애불 중에서 가장 뛰어나며 백제 후기 7세기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기에 백제의 국력이 강성했고 불교가 번성했으므로 백제의 풍요로운 모습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고 한다. 마애삼존불이 중국의 불교문화에 영향을 받았지만, 백제인들에 맞는 독창적인 불교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서산마애삼존불이라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가야산 주변은 백제가 중국과 교역을 하던 주요 교통로였다. 이곳은 중국에서 태안반도를 경유하여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와 같은 지리적인 이유로 서산마애삼존불이 가야산줄기 깊숙한 곳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