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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간월암(看月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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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간월암(看月庵)
  • 김정헌<동화작가·구항초등학교장>
  • 승인 2016.05.23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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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이 짓고, 만공이 천일 구국기도

▲ 바닷물에 둘러싸인 간월암.
우리가 살고 있는 내포지역 주변의 크고 작은 고찰들은 산속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벗어나서 강가나 바닷가에 위치한 사찰들도 더러 있다.

우리고장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는 천년고찰 간월암이 있다.

간월암이 위치한 간월도는 원래 섬이었다. 1984년에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와 홍성군 서부면 궁리를 연결하는 서산방조제 사업이 완공되면서 간월도는 섬 아닌 섬이 되었다. 간월암은 천수만 바다와 안면도를 배경삼아서 간월도 한쪽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암자이다.

간월도의 옛 이름은 피안도(彼岸島)라고도 불렸다. 간월암의 옛이름도 피안사(彼岸寺)로 불렀다고 한다. 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는 암자의 모습이 물위에 떠있는 연꽃이나 배와 비슷하다고 하여 연화대(蓮花臺)로도 불렀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낙가산(落迦山) 또는 원통대(圓通臺)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전한다.

간월암의 지형적인 특징으로는 밀물 때는 바닷물에 둘러싸여서 섬이 되고 물이 빠져나간 썰물 때는 간월도와 간월암으로 오가는 바닷길이 열리면서 육지처럼 걸어서 드나들 수 있다.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해질 무렵의 낙조모습과 바다위로 달이 떠올랐을 때의 모습이 빼어나서, 사시사철 관광객들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명승지이다.

간월암의 유명세에 걸맞게 전하는 이야기들도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로는 조선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와 관련된 일화들이다.

간월암은 무학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고 하여 간월암(看月庵)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섬 이름도 자연스럽게 간월도가 되었다고 한다.

▲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마음 급한 관광객들이 신발을 벗고 간월암으로 향하는 모습.
무학대사의 탄생 유래담도 이곳 주변지역에서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무학대사가 어머니 뱃속에서 만삭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나라에 빚을 지고 갚을 길이 없어 피신하자, 대신 어머니가 서산 관아로 잡혀가게 되었다고 한다. 관원들에게 끌려가던 어머니가 산기를 느껴서 부랴부랴 길옆에서 아기를 낳고 옷가지로 아기를 덮어 놓은 채 관아로 갔다고 한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원님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빨리 아기에게 가보라는 명을 내렸다. 관원들이 달려와 보니 커다란 학 한 마리가 큰 날개를 펼쳐서 아기를 덮어주고 있었으며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원님은 “참으로 상서로운 일이다. 이 아기는 앞으로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고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무학(舞鶴)’이라고 지어주었다는 탄생유래담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학대사의 한자표기는 ‘무학(無學)’이며 이곳에서 전하는 이름은 ‘무학(舞鶴)’이다. 무학대사의 탄생유래담과 관련된 사실의 진위여부보다는 재미있는 전설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상당부분은 과장되고 미화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무학대사가 수도생활을 했다는 간월암을 더욱 친근감 있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정헌<동화작가·구항초등학교장>
간월암은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으로 폐사된 후에 오랜 세월동안 방치되다가 일제 강점기인 1941년에 만공선사가 중창하였다.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면서 기도를 마치면 광복이 되리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만공선사의 예언대로 천일기도를 마친 다음날에 광복을 맞이했다는 의미 깊은 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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