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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희생자는 20~30대 중심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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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희생자는 20~30대 중심 농민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6.05.20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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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유해발굴 조사결과 발표 … ‘현장 보존 역사교육장’제안

▲ 박선주 단장이 유해 발굴과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1950년 7월 초 20~30대가 대부분인 홍성지역 남자 농민 보도연맹원이 홍성읍 용봉산 기슭에서 무고하게 공권력에 학살돼 광천 담산리 폐광산에 최소 21명 이상 매장된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지난 20일 홍성군청 제1회의실에서 광천읍 담산리 유해 발굴 조사 결과 종합 보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선주 조사단장은 지난 2월 26일부터 29일, 3월 4일부터 8일까지 광천읍 담산리 산 93-1번지에 대한 발굴 결과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으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유해매장지임을 확인하였다고 발표했다. 좁은 동굴 입구와 2m 들어간 지점에 18구의 유해가 엉켜 있는 등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발굴조사 결과 부위를 확인할 수 있는 뼈는 모두 233개로 머리뼈와 사지뼈를 종합해 볼 때 최소 21개체로, 모두 남성이며 20대가 6명, 30대 8명, 40대 2명, 어른 2명, 불가 1명 등으로 분석됐다. 사지뼈에 총상 흔적이 관찰되고, 머리뼈 부위에서 M1 탄두 1개 등 모두 2개의 탄두가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총기류(M1 소총)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가늠된다. 탄두의 출토가 적은 점으로 보아 굴 밖에서 희생당한 후 굴 안으로 유기 된 것으로 보인다.

유해 외에도 단추, 가죽혁대, 고무신, 버클 등 30여점의 유품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병규’라는 이름이 새겨진 라이터가 출토되기도 했다. 피해자 수에 비해 버클, 단추, 고무신 등의 수가 적은 점, 품질 등을 통해 종합 분석 결과 학살 시기를 무더운 7월 초, 직업은 주로 농민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박 단장은 희생된 시기, 유품 내용, 증언 등 종합 분석 결과 보도연맹 희생자 유골일 가능성이 높다며 3개체의 유골에서 DNA 샘풀을 채취하여 서울대 법의학교실에 보내 분석 중이므로 결과가 나오면 더 확실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박 단장은 “홍성지역 보도연맹 사건은 조사가 미비해 국가차원의 적절한 재조사가 요구된다. 담산리 유해 발굴 지점은 굴의 상태가 좋아 보존가치가 있음으로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추모공원이나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요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광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장은 발굴에 적극 협력한 김석환 군수와 이상근 군의장, 최선경 군의원, 이보영 전 광천농협 조합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김석환 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당시 공권력에 희생된 민간인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던 젊은 청년들이었고 이적행위나 적대행위와 전혀 무관한 우리의 이웃이자 형제였다. 늦게나마 진실의 일부가 밝혀져 다행이다. 홍성군은 올해 편찬하는 홍성군지에 보도연맹사건의 진실을 수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근 의장도 군의회 차원에서 진실을 밝히고 억울한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데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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