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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장현배 전 서울시향 부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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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장현배 전 서울시향 부수석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5.02.13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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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오케스트라 매료시킨 ‘까레이스키’

▲ 1996년 세종문화회관 독주회 당시
농촌소년, 트롬본을 만나다

차가운 금속재질과는 상반되게 따뜻한 음색이 돋보이는 트롬본은 웅장하면서도 중후한 음색이 매력적인 악기다. 장현배(60)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수석은 트롬본과 참 많이 닮았다. 수십 명의 아티스트가 한 무대에 서는 오케스트라에서 음악의 뿌리 역할을 하는 악기가 트롬본이다. 직선적이고 호소력 있으면서도 장엄한 소리를 내는 트롬본처럼, 장현배 씨는 서울시향에서 든든한 뿌리 역할을 해왔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트롬본을 연주해온 그를 알아가는 데 음악 말고는 다른 단서가 없어 보인다.

러시아 유학 중 오케스트라 협연

홍성읍 옥암리가 고향인 장현배 씨는 故 장두섭, 황정선 씨 사이에서 태어나 홍성초(59회), 광흥중(20회), 홍성고(30회), 한양대 음대를 졸업했다. 1983년 서울시향에 입단해 부총부, 총부, 제2수석을 역임했으며, 199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학교(Saint Petersburg State Conservatory) 전문 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러시아 유학 시절 Saint Petersburg State Capala Orchestra의 단원으로도 활약했고, Saint Petersburg State Conservatory Orchestra와 협연하는 꿈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홍성고 음악교사의 한마디, 인생을 바꾸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네 삶이 꼭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홍성고 1학년 때 음악선생님이 밴드부 단원을 거의 반강제로 차출했어요. 그땐 키순으로 번호를 정했는데, 40번 뒤쪽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제게는 ‘너는 키가 크니까 트롬본 해라’고 하셨죠. 그땐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게 될 줄 몰랐어요. 돌아가신 어머니는 ‘너 어릴 때 교회에서 하모니카 불었다고 하나님이 트롬본 불게 해주시나 보다’라고 하셨죠.”

밴드부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농사일을 돕는 고된 일상도 그저 즐겁기만 했다. 3학년 2학기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갔다.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 한 시간 넘게 걸어서 홍성역에 갔어요. 완행열차로 네 시간 꼬박 걸려 서울역에 도착하고도 선생님 댁까지 또 버스 타고 한참을 가야 했죠. 한 시간 레슨을 받고 홍성에 오면 밤 열 시가 넘더라고요.”

기초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대도시 학생들과는 실력 차이가 컸던 터라, 연습량을 늘리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었단다. 모든 물건이 다 그렇지만 특히 악기는 주인이 아껴주는 만큼의 소리로 보답하는 법이라는 말에 힘이 실렸다.

악기에 피 마를 날 없던 연습벌레

한양대 음대 재학 시절에도 소문난 연습벌레였다. 이른 아침 눈뜨는 순간부터 늦은 밤 잠들기 직전까지 온종일 연습에 매달렸다. 입술은 물론 악기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건 러시아 유학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의 연습실에서 림스키 동상을 내려다보며 림스키 트롬본 협주곡을 연주할 때의 짜릿함이란! 밤에도 해가 떠 있는 러시아의 백야 때문에 연습벌레 인생에서 유일하게 환한 태양 아래 귀가했던 시절이었다.

“서울시향 우수단원 특례로 러시아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테이트 카팔라(Capala) 오케스트라에서 입단을 권유하더라고요. 아직 배울 게 많다며 주저했더니, 자신들이 다 실력을 보고 결정한 건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고 화를 내더군요.(웃음) 외국인 단원은 저 한 명이었어요. 저를 지도해주셨던 빅토리 바실레비치 수메르킨 선생님이 저를 한국의 아들이라며 ‘까레이스키’라고 불렀는데, 제 트롬본 소리가 레닌그라드필 수석주자였던 카즐로프의 강렬한 소리를 닮았다며 무척 아껴주셨어요. 제겐 극찬이었죠.”

세월의 더께 털어낸 ‘오리지널’의 무한변주

2004년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기념 연주회 당시 장현배 씨는 3500여 관중 앞에서 라벨의 볼레로 솔로를 연주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트롬본과 더불어 인생을 썩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트롬본에 죽고 살던 패기만만한 젊은이는 어느덧 후배들을 양성하는 지도자의 위치에 섰다. 2009년 서울시향을 떠난 후 장현배 씨는 어릴 적 자신처럼 배움의 기회가 간절한 제자들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고려대학교 취주악부 지휘 경력을 바탕으로 홍성고등학교총동문회 행사에서 교가 지휘로 재능기부도 한다. 불처럼 강렬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물처럼 부드럽게 변하는 트롬본처럼, 장현배 씨가 뜨거운 열정으로 변주해 나갈 인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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