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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상선<전 홍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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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상선<전 홍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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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1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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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아닌 홍주를 찾으려 홍성에 왔다 <上>

▲ 이상선<전 홍성군수>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홍성 내 고향을 잠시도 잊을 수 없어 늘 뜨겁게 내 가슴에 품고 산다.

그 옛날 홍성역에서 서울 가는 사람 전송하러 가서 플랫 홈에 서서보면 기찻길 옆 옆으로 길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 있어 보기가 좋았었는데 제철이라도 그 모습이 없어서 섭섭하였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 역’ 이 십팔 번지 곡이 되고 보니 더욱 생각난다.

나이 드신 분들도 같은 심정이라 생각된다. 홍성역은 홍성뿐 아니라 서산·태안 사람들이 서울 가려면 많이들 홍성역에 와서 기차구경도 하고 적당히 짭짤하여 입맛이 나는 살조개를 역 앞에서 한 봉투 싸가지고 기차를 탔었지.

그 맛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서울에서 막차타고 홍성역 가까이 오면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산·태안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에 줄을 선다.

왜냐하면 먼저 나가 뛰어야만 서산가는 버스의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비포장도로 40km 이상을 서서 가려면 어려우니까 빨리 뛰어야만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때는 버스가 한두 대 밖에 없었지. 무엇을 말하는지 젊은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어르신들은 그때 생각하시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 한참이나 세월이 지난 후 직행버스 대동버스가 들어와 막차를 대기하여 뛰어야하는 일이 없어지고 홍성역 주변의 허술한 여관 하숙에 들지 않아도 서산·태안을 갈 수 있게 되었는데 하숙과 여관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버스가 대량 들어와 하숙손님들이 다 없어졌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었지요. 홍성역을 이용하시던 서산·태안 손님들 지금 와서 생각하시면 우스운 추억이 되라라 생각됩니다. 오늘날 도로교통사정이 좋아지고 사통팔달 도로마다 관광차량이 넘쳐나고 자가용이 세대마다 거의 가지고 있어 이런 얘기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가 되어 버렸다.

도청이 홍주 땅에 왔으니 온양까지 내려온 지하철이 홍성역까지 연장되는 것도 머지않을 전망이다. 건강하기만하면 홍주사람들 좋은 세상이 아닌가 한다.

땅값도 오르고 도청이 제대로 자리 잡으면 보이지 않는 이익이 나타날 것이다.

누구나 무병장수하기 바란다.

공직에 있을 때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홍성을 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

경상도 친구하나가 잽싸게 너 고향 홍성이라고 했는데 홍성이 어디쯤 붙어있고 그곳을 가려면 어찌하노하고 질문을 하였다.

방정맞은 문둥이 놈보다 충청도 양반답게 천천히 느긋하게 홍성얘기를 시작했다.

경상도 문등이놈 들어봐라! 니(너) 혹시 장항선열차를 타보았나 하였더니 아직 못타보았다고 한다. 부산 가다가 꼭서는 천안은 아나? 안다! 천안에서 내려 보진 안했어도 지나친 것은 아는 모양이다. 천안명물 호두과자나 가락국수 사 먹었을 테니까 틀림없이 천안은 알았을 것이다. 계속해서 너 온양온천은 아냐? 온양은 안다. 천안에서 기차를 탔으나 그게 바로 장항선이지 천안에서 한정거장 지나니 온양온천역 이드라. 온천 가서 목욕하느라 갔었다. 그 뒤에는 현충사 가느라고 여러 번 갔었지. 온양 역에서 두정거장 지나니 예산역이 나오지 그다음 역은 가수 조영남이 제2고향 “내고향 충청도라네” 하는 삽다리(삽교역)에 도착하니 수덕사와 덕산온천 층의사(윤봉길의사)를 가는 사람들이 내리고 다음역에 오면 바로 유명한 나의 고향 홍성역에 도착한다. 홍성역 지나면 광천역이 나오고 시골간이역 하나 지나면 대천역이 나온다. 대천해수욕장 때문에 알지! 부산해운대해수욕장에만 가서 서해안 대천은 아직 몰랐다 한다. 그러니까 네가 아는 온양온천역에서 내려오고 대천역에서 올라오면 그 중간에 있는 역이 이양반이 사시는 홍성역이라고 했으니 아무리 둔한 놈도 이정도면 홍성을 찾아오는데 문제가 없을 것 이다. 홍성을 알리게 하는 구차한 설명이었지 온양과 대천의 중간이라는 설명이 쉽게 이해가 되었다. 기왕에 장항선 탓으니 홍성역 다음 광천역에 내려보자.

광천은 홍성군 관할의 읍으로서 군청소재지 홍성읍보다도 인구가 더 많았을 때가 있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된 도시였다.

광천에 있는 옹암포(항구)는 서해안에서 제일 큰 서산 안면도(안면읍)을 비롯한 수많은 섬사람들이 들어와 광천에서 생필품을 사가고 어업도구들을 사서 가는 곳이다. 광천시장이 크게 번창 했었지. 서산과 안면도 사이에 연륙교가 없어 부득이 배를 타고 광천에 오게 되었었지. 광천 5일장 서는 날 (4일과 9일) 전날에는 광천에 숙소잡기 어려웠고 섬사람들이 몰려와서 밤늦게 까지 흥청대었지.

시장, 역전 골목마다 술집목로 마다 꽉 차고 제법 쓸 만한 요릿집 색시집(태평관, 쌍양관, 대중옥, 순월장, 광일옥 등)이 손님으로 초만원 이였고, 아가씨들의 교성과 흘러간 유행가 소리가 밤새워 들렸지 전국 어느 곳보다도 활기찬 도시였었지. 지금까지 전통식품으로 유명한 조선김 광천 김과 토굴새우젓은 전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요. 오서산 등산하고 광천시장에 들러서 새우젓과 김을 사가지! 광천장날 저녁에는 장날마다 50여대의 화물차들이 화물을 가득 싣고 서울로 가고 광천 김과 계란은 서울의 동대문 시장의 김 값과 계란 값을 좌우 했었지. 상업이 크게 발달했으니 전국에서 3대 시장의 한곳이라고 불렀지. 그 당시 3대 시장 하면 광천시장을 비롯해서 강경시장, 전남에 있는 벌교시장을 내세웠지. 모두 배가 들어오는 곳으로 육상과 해상물류가 교류 되었고 교역량이 많아지니 상업도시가 되었지. 따라서 유명한 상업고등학교가 설립되고 개교되어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었지! 광천상고, 강경상고, 벌교상고는 전국에서 유명했었지.

▲ 홍주는 홍성의 옛이름으로 고려초에 붙여진 지명이다. 사진은 하늘에서 바라본 홍주성의 모습.
홍주는 홍성의 옛 이름으로 고려 초 1012년에 붙여진 옛 지명으로 1000년을 넘었지. 그런데 충남도청이 옮겨 오던 해와 겹쳐서 대단한 기념행사가 있으려나 했는데 내포귀신 때문인지 아무 일도 없이 지나쳐 지금도 모자란 아이들이 괘심하다.

홍주는 전국에 12개 구이 있을 때 그중에 하나인 홍주구이었고 충청도에 4개수(청주, 충주, 공주, 홍주)이었을 때 홍주구이였고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전국에 23개부가 있을 때도 홍주구은 그중의 홍주부가 되었고 부제가 없어질 때 충청도의 청주부 충주부가 합하여 충청북도가 되었고 공주부와 홍주부가 합하여 충청남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왜인들이 홍주에 들어와서 보니 민족혼이 너무나 센 고장이라 그 기운을 죽이려고 전국에 내린 창씨개명과 단발령까지 내렸으나 이곳 홍주에서는 홍주라는 지명까지 없애 버렸는데 다시 홍주군과 결성군의 지명중에 한자씩 따서 홍성군이라고 지명까지 왜놈들이 바꿔 놓았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특이한 것은 전국에 일찍부터 ‘주’자가 붙은 도시(전주, 광주, 청주, 나주 등)들은 모두 시로 승격되었고 홍주목에서도 서산, 당진, 보령이 시가 되었지만 유독 홍주만이 시가 되지 못한 것은 경인들이 지역의 이름을 바꿔놓은 영향이고 저주가 아닌가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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