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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야생동물 24시/ 야생동물 사체를 수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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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야생동물 24시/ 야생동물 사체를 수습하며
  • 안현경 기자
  • 승인 2012.10.29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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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연재중인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블로그 이야기 대신 기자가 직접 겪은 일을 지면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 너구리 몸에서 구더기를 씻어 내고 있는 모습.
지난 10월 초, 홍북면 봉신리 홍농연회관 앞에서 차에 치여 삵이 죽어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제보를 한 주민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저는 3일쯤 뒤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김영준 수의관 님이 “거기가 어딘데? 사체 가지러 가게” 그러는 겁니다. 골격 연구 자료로 쓰겠다는 말에 덜컥 “제가 갖다 드릴게요!” 하고 약속해 버렸습니다.

문제는 삵의 시체가 너무 심하게 부패했다는 겁니다. 그 사이 비가 내려 길바닥에 달라붙어버린 데다 머리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고 썩는 냄새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습니다. 다시 김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무 썩었어요. 정말 쓸모가 있는 거예요?” 김 선생님이 짧게 한 말씀하시더군요. “화이팅!” (-_-;)

홍북면에서 내포신도시 방향으로 가는 길은 트럭이 많이 지나다니고 속도도 무척이나 빠릅니다. 달리는 차들을 살피며 뻣뻣해진 삵 시체를 담아보려는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이 동물이 겨울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채 죽은 것을 헛되게 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길 한가운데 가드레일 밑에 쭈그리고 앉아 신문지로 덮은 무언가를 어설프게 김 박스에 집어넣으려는 내 모습이 지나가던 운전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을 겁니다.

실랑이 끝에 사체를 겨우 담았습니다. 트렁크에 실었는데도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앞에 달리는 돼지 실은 트럭 냄새가 오히려 향긋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예산으로 달려가 의기양양하게 수의사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수의사님은 별것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사체를 휙 꺼내더니 “많이 상했네요. 죽은 후 바로 냉동실에 보관하면 갖고 오기가 훨씬 쉬웠을 텐데.” 했습니다.

보아하니 죽은 사체에 꼬물거리는 구더기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날 수의사와 재활구조사들은 살아 있는 너구리 몸에서 구더기를 일일이 제거하고 있었습니다. 이 너구리는 몸 곳곳에 상처를 입었는데 구더기들이 달라붙어 살을 파먹고 있었습니다. 약으로 구더기를 죽였다가는 살 속에 있는 채로 죽어버리기 때문에 미지근한 물을 틀어 놓고 칫솔로 일일이 구더기를 한 마리씩 찾아 씻어 내고 있었던 겁니다.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일은 생각처럼 재밌기만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동물들을 다시 자연으로 놓아줬다가 다시 죽음으로 만나는 힘 빠지는 경험도 심심찮게 한다고 합니다. 허망할 것 같으면서도 놓을 수 없는 일들을 그들은 무심히, 묵묵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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