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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이상학<㈜천재교육 수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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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이상학<㈜천재교육 수원지사장>
  • 윤진아 기자
  • 승인 2012.05.11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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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책 냄새에 20년 세월이 훌쩍

사무실에 들어서자 공기 사이로 부유하던 책 냄새가 기자를 반긴다. 형편에 따라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했지만,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공간에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의 삶의 이야기가 꼭꼭 숨어 있다. 홍성읍 오관리가 고향인 이상학 지사장은 홍성군청 산림과장으로 정년한 故이찬오 씨와 김세두(82) 씨 사이에서 태어나 홍주초(25), 홍성중(27회), 홍성고(32회)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근면, 성실, 강직, 청렴을 강조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마음만은 공무원이에요(웃음). 운동을 유별나게 좋아했던 것만 빼면 말 참 잘 듣는 아이였지요.”

허구한 날 동네 아이들을 모아 골목 귀퉁이에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야구를 했다. 프로야구사 각종 ‘1호’ 기록의 소유자였던 윤동균 선수가 선발 등판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단다. 그의 우상이 던진 세상 가장 멋진 강속구가 가슴속에 들어와 박힌 건 어찌 보면 운명이었노라고 했다. 빼어난 운동신경 덕에 4번 타자와 투수는 늘 그의 몫이었다.

일주일에 네번은 지인들과 즐거운 산행

“야구뿐이겠어요. 봄가을엔 탁구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탁구 시합을 했고, 겨울에는 방죽으로 몰려가 스케이트를 탔지요. 얼음판 위로 10cm는 떠서 다닌다고 했을 만큼 저의 스케이트 실력은 다들 알아줬다니까요(웃음).”

요즘도 일주일에 네 번은 산에 오른다.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산행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또다시 다가올 치열한 일상을 여유롭게 준비하며, 그는 지인들에게 더 좋은 동행자가 되어간다는 자신감을 얻는다고 했다.

“중3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이건주 선생님이 생각지도 않았던 규율부 경험을 권해주신 덕분에 한층 자신감이 붙었어요. 고3 담임 홍상순 선생님은 제 장점을 많이 끄집어내 주셨고요. 운 좋게도 훌륭한 스승을 만난 덕에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그분들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중앙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천재교육에 입사해 1992년 수원지사에 발을 디뎠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딱 20년째다.

“비록 큰 벌이는 못 돼도 학교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에 보람이 커요. 연고 하나 없는 수원에 처음 왔을 땐 경쟁사의 텃세로 마음고생 꽤나 했지만, 관내 초등학교 83곳, 중학교 53곳, 고교 42곳의 선생님들과 보낸 20년 세월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부인 김은이(47) 씨도 수원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 중이다. 이래저래 책과 함께하는 인생이 됐다는 너스레에 미소가 고인다. ‘무드셀라 증후군’이란 게 있다. 나쁜 기억은 싹둑 가지를 쳐내어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다. 교육사업과 연을 맺은 뒤 이상학 지사장은 바로 이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했다. 바쁘고 고된 하루하루지만, 지나고 나면 그저 가슴 벅찬 뿌듯함만 남는다니 괜한 농은 아니다. 설령 사회를 이끄는 게 단 1%의 지도층일지라도 나머지 99%가 형편없다면 그 사회의 존재 자체가 불투명한 일이라고 단언하는 그는 “반석같이 빛나는 99%의 청춘들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더 달달 볶을 의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재수원동문회 활성화시켜 모교 힘 실어줄 것

재수원홍성고등학교총동문회(회장 남기웅)의 부회장으로도 재임 중인 그는 모교 발전에 힘을 싣고자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구상 중이다.

“홍성군의회 이상근 의원이 제 동생이에요. 오지랖인지 모르겠지만, 형으로서 괜히 제 어깨도 같이 무거워지더라고요(웃음). 비록 몸은 나와 있지만, 그래서 더욱 고향의 얼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에게는 늘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매달 한두 번씩 고향에 내려가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여정은 더없는 에너지원이 되어주고 있다.

“하나약국 광중이가 제 동기인데, 저희 어머니가 약 사러 갈 때마다 약값도 안 받고 아들 노릇 한다더라고요. 이승원내과 승원이, 백영기, 최병수, 전병무, 모두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제 인생 가장 큰 자산입니다.”

또 모르겠다. 수십 년쯤 뒤에는 백발이 성성한 야구선수로 분해 좀 더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을지도. 그때까진 여전히 책 냄새를 사랑하며 닳아가는 종이와 함께 세월을 보낼 것 같다. 자칫 한쪽으로만 기울 수 있는 마음에 균형을 주고 함께하는 혜안을 얻는 것이야말로 책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책더미 위에 걸터앉아 ‘공존’을 논하는 표정이, 머리 위 하늘처럼 맑고 푸르다.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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