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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수 잔치 연 금마 인흥마을 민재식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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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수 잔치 연 금마 인흥마을 민재식 할아버지
  • 안현경 기자
  • 승인 2012.03.09 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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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된 증손자와 ‘100년의 세월’ 대화

금마면 인산리 인흥마을 민재식 할아버지네 집에서는 지난 4일 민 할아버지의 100수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다. 150여 명의 친지가 모였다. 같은 마을 장부자 씨는 “예전부터 집안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 지냈다”며 백수 잔치 소식을 본지에 전했다. 민재식 할아버지와 큰 손녀 민경희 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할아버지가 살아온 100년 가운데 며칠을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 주>

▲ 100수를 맞은 민재식 할아버지가 100일 된 증손자 경서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 100살 생일이라고 병렬, 병예, 병수, 병은, 병구 5남매가 잔치를 마련했다. 며칠 전부터 가족들이 잔치를 준비하더니 돼지도 잡고 국수며 잔칫상이 푸짐하니 맛나다. 집 마당에는 동네주민들이 ‘백수 축하’ 현수막도 걸었다. 조카며 손자들이 나 들으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아무개예요,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할 때마다 기억을 더듬어 누구 아들이고 어떤 얼굴이었던가 생각해 낸다. 큰 손녀가 기분이 어떠냐 하기에, “너무 살았지 뭐” 했다.

▲… 일제 때 황해도에서 걸어 내려온 게 생각난다. 삼형제 중 둘째로 열아홉 살에 가진 것 없이 장가를 들었다. 벌이가 좋다는 소문만 듣고 스물두살이 되던 해 덜컥 황해도로 가는 배를 탔다. 아침 먹고 인천까지 걸어간 다음 배를 타고 저녁에야 도착했다. 다행히 어떤 마음 좋은 이가 저녁밥을 주었다. 쌀, 조, 피가 들어간 오곡밥이었다. 그런데 소문과 달리 일자리가 없었다. 일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하는 수없이 내려와야 했는데 돈을 못 벌었으니 배삯이 없었다. 같이 떠났던 석산마을 황가와 둘이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밭에 있던 늙은 참외와 고추를 따 먹으며 집으로 내려왔다. 사흘을 걷는데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황가는 배 곯는 걸 잘도 참던데. 나는 배 곯는 걸 견디질 못했다.

▲… 내려와서 남의 땅 농사도 짓고 금광(지금 금정샘)에서 일도 했다. 캐면서도 그게 금인지 몰랐는데 왜놈들이 다 가져갔다. 해방되고 나라에서는 경작인에게 토지를 주는 농지개혁을 했다. 하지만 알고 지내던 주인의 땅을 차마 뺏을 수 없어서 신청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일해 가며 5남매를 키우고 살았다. 큰 아들 병렬내외와 함께 산 세월도 벌써 56년이다. 며느리도 이제 77세다. 할멈은 12년 전 먼저 세상을 떴다. 애기처럼 기저귀 갈아주며 돌보았는데.

▲… 한국전쟁 이야기를 물어보는데 피곤하다.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인지 잘 모르겠다. 쉬어야겠다. 누워 있으려니 손주며느리가 100일 된 아기를 안고 와 젖을 먹인다. 나와 아기 사이에 100년의 시간이 있는 거라며 품에 안겨 준다. 울먹이던 아기는 신기하게도 사진 찰칵거리는 소리를 듣자 웃음을 짓는다.

▲… 황해도에서 주린 배를 잡고 걸어내려오던 금마 청년은 이제 사진기 셔터 소리를 알아듣는 아기가 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한항공 기장이 된 장손 덕분에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을 구경하며 제주도로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고단하지만 어쩐지 아기를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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