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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진<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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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진<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 윤진아 기자
  • 승인 2012.02.29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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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사법부 아우른 현직판사 첫 국회전문위원

악수를 건네느라 맞잡은 손이 참 따뜻하다. 이 손으로 그는 20여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민·형사 사건을 판결해왔다. 2009년에는 현직 판사 출신 최초로 국회 전문위원에 임명돼 입법과정도 참여했다.

지난달 27일 대법원 정기인사에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임명돼 법원으로 복귀한 이영진 판사를 만났다. 2년간의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 임기를 마친 그는 지난해 9월 이후 사법연수원 교수로 모두 14회에 이르는 사법연수생들을 지도하고 사법시험 문제를 출제하며 바쁘게 지내는 참이었다.

일복은 타고난 사람이다. 20여 년의 판사생활. 한창 바쁠 때는 1년에 350여 건을 다룬 적도 있다. 제32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로 법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영진 판사는 바쁜 업무 중에도 진실규명을 위해서라면 전국 어디든 현장검증을 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고난 일복 … ‘진실규명 현장검증’은 습관

“서류나 주장만으로 판단하는 것과 현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르거든요. 사건을 맡으면 직접 현장을 찾는 습관이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이 돼서도 여전해, 법안심사를 하다가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입법조사관들을 끌고 현장으로 달려갔지요. 사회실정을 반영한 완벽한 법안을 만드는 게 제 소임이었으니까요.”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법부, 법의 제정에 참여하는 입법부 영역을 모두 경험한 그는 ‘판사 출신 1호’라는 책임감이 큰 만큼 좋은 선례가 되도록 온 힘을 다했노라고 했다.

“올바른 법을 만들어줘야 정당한 법해석 및 법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원으로 활동하면 할수록 판사가 입법과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지요. 법을 해석해야 하는 판사의 경우 해석이 애매할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법률안은 판결보다 국민에 미치는 영향과 범위가 훨씬 넓은 만큼 검토에 더욱 신중하게 됐고요.”

2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간 법률안이 많지만 특히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이 기억에 남는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부정부패가 연일 드러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감시하기 위해 단체장과 독립된 지위에 있는 전문 감사를 외부에서 충원하도록 한 것이다.

원래 꿈은 교수가 되어 좀 더 심도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유학 갈 형편이 못 되어 사법시험을 보게 됐다는 그는 법관이 되어서도 공부를 쉬지 않고 틈틈이 논문을 써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법관으로서 사회와 국가로부터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는 이영진 판사는 이제 그 사랑에 보답할 차례라고 말한다.

1997년 그가 중심이 되어 만든 ‘성균관대 법조동문회 또또장학금’을 통해 15년째 꾸준히 장학금 지원 및 멘토 역할을 이어오고 있는 것 이외에도, 지난 12월에는 사법연수생들과 함께 일선 고등학교를 찾아 특강을 하기도 했다. “법을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법조인의 중요한 책무”라며 이영진 판사는 “학교폭력 방지, 인재양성 차원에서 앞으로는 이러한 재능기부 활동을 좀 더 확대하고, 법률적 무지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소통의 기회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갈산면 상촌리가 고향인 이영진 판사는 故이석호, 이병완(81) 씨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갈산초등학교(54회) 5학년 재학 중 서울로 올라왔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제32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후 수원,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등법원 판사, 전주지법, 수원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으로 근무해왔다.

갈산면 상촌 고향 지키는 친구들 부러워

친구들과 어울리며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만큼 고향에 대한 애착도 깊다. “천도횟집 사장 길섭이, 갈산농협에서 일하는 원부, 서울로 올라와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승완이가 다 제 오랜 친구입니다. 치과 원장인 용태와는 유학시절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을 만큼 애틋한 관계고요.(웃음) 당시 한창 축구 붐이 불어서 방과 후면 러닝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해질녘까지 친구들과 공을 찼어요. 인근 구항, 광성, 동성리 마을로 원정 시합도 다녔죠.”

축구장비를 마련한답시고 ‘아이스케키 장사’를 시작했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족족 인심을 쓴 덕에 이익니 안 남아 낭패를 봤던 일, 마을 뒷산 병암산으로 칡뿌리 캐러 다니던 기억, 수박서리하다 잡혀 어머니가 대신 돈을 물어주시고 호되게 혼난 기억 등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흐뭇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지금까지 열지 않았던 문을 두드리며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영진 판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끝없는 화두이자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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