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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화 읽어주는 아빠’ 편사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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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화 읽어주는 아빠’ 편사범 씨
  • 홍성신문
  • 승인 2011.07.2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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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집안내력 “좋은 건 퍼뜨려야죠”

출향인 편사범(58) 씨가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편사범 씨를 비롯해 고 이태석 신부 등 24명을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로 지난달 28일 선정했다. 편사범 씨는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20여 년간 소외된 어린이들에게 동화구연 봉사를 펼쳐왔다.

판문점서 제주까지 50여 차례 공연

“깊고 깊은 산 속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외로이 살고 계셨어요.” (해설자)

“이봐요, 할멈! 우리 죽기 전에 세상구경이나 해볼까요?” (할아버지)

“호호호 그러세요~ 빨리 짐을 꾸려야겠군요.” (할머니)

편사범 회장이 걸걸하고 탁한 할아버지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주기 시작하자 웅성대던 아이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간드러지는 목소리의 할머니로 분한 회원의 자녀는 목을 쭉 빼고 ‘평소와 다른 아빠 구경’에 여념이 없다. 과묵한 아빠는 여기 없다. 서툴고 어설퍼도 아빠의 변신 그 자체로 아이들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으며 좋아한다.

동화구연아버지회는 전국아버지동화구연대회에서 우수상 이상을 받은 ‘끼 있는 아버지들’의 봉사모임이다. 공연마다 두 팔을 걷어붙이는 ‘골수회원’들을 포함해 전국에 850여 명의 회원이 포진해 있다. 1992년 제1·2회 대회 입상자들이 “동화구연으로 사회봉사를 해보자”며 결성해 보육원, 양로원, 소아암 병동, 오지 초등학교 등을 돌며 지금껏 50여 차례 무료공연을 했다. 편사범 씨는 1992년부터 동화구연아버지회 회장으로 장기집권(!) 중이다. “MBC문화센터 강사로 강의도 하고, 먹고살기엔 충분할 만큼 벌거든요. 제 수입의 일정금액을 적금 들어놨다가 공연 때마다 타서 쓰고 있어요. 회원들에게는 ‘입봉사’만 해달라고 부탁했지요.”

정부나 기업체에서 후원해준다는 제의가 숱하게 들어왔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상업적 공연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 돈으로 공연한다면 그게 심부름이지 우리 봉사인가요?”라는 반문에 미소가 고인다.

동화로 세상 밝히는 ‘아빠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국제웅변학원에는 늦은 밤까지 목소리 연기 연습을 하는 아저씨들로 시끌벅적하다. 경찰, 농부, 회사원, 교사, 택시기사, 판사 등 회원들의 다양한 직업 탓에 밤 10시쯤 만나 새벽까지 연습한다. 치마를 입는 역할일 경우 다리털을 모두 깎을 정도로 열성이다. 프로배우처럼 능숙하진 않아도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건 ‘아버지의 정’이란다. 간혹 대사 실수도 하고 공연 도중에 넘어져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문화체험의 기회가 많지 않은 오지에 가면 아이들이 사인해 달라고 줄을 선다. 웬만한 아이돌 그룹 부럽지 않은 인기다. 아이들에게 감사편지를 받을 때나 소아암 병동 아이들이 치료를 더 잘 받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솟는다.

봉사활동에는 편 회장의 가족들도 뜻을 모아 참여하고 있다. ‘나눔’이라는 집안내력 외에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온 가족이 장관상 수상자라는 점이다. 편 회장의 아내 정은경(MBC문화센터 강사) 씨는 전국스피치대회 대상 법무부장관상을, 장녀 지영(삼성레포츠문화센터 강사) 씨는 대한민국선생님동화구연대회 대상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장남 승원(경희대 3년) 씨는 전국동화구연대회 대상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봉사집안 광천읍내 종묘사집 아들

광천읍 광천리가 고향인 편사범 씨는 고 편무용, 김연분 씨 사이에서 태어나 덕명초(49회), 광천중(20회)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부모님이 광천읍내에서 종묘사를 했어요. 장날이면 씨앗만 파는 게 아니라 수박화채 같은 걸 만들어 오가는 분들에게 한 사발씩 드리곤 하셨지요. 홍동, 홍북 등 멀리서 오신 분들은 아침도 제대로 못 드시고 나오셨을 거라며 큰 솥에 밥도 많이 해두셨고요. 덕분에 저는 어려서부터 장날은 곧 잔칫날인 줄 알았습니다(웃음).”

형 편기범(전 대한웅변인협회장) 씨는 ‘너른내(광천의 순우리말) 장학회’의 이사장이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4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홍성의 초·중·고·대학생에게 전달했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형님 따라가려면 저는 아직 멀었지요(웃음). 안 그래도 형님이 ‘전국을 돌면서 왜 고향에서는 봉사를 안하느냐’고 꾸짖으시더라고요. 올해는 연말까지 공연 일정이 꽉 들어찼고, 내년 설이나 추석 전후로 제일 좋은 날을 잡아서 고향에도 기쁜 마음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정성껏 준비할 테니 많이 보러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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