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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살림을 보살펴준 ‘업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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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살림을 보살펴준 ‘업누리’
  • 홍성신문
  • 승인 2009.03.23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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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의 숨겨진 이야기/ 금마면 죽림리 ‘배양마을’

▲ 업누리가 있던 자리
우리고장 홍성군 금마면 죽림리에 배양마을이 있다. 흔히들 배양골이라고 부르는데, 배양초등학교의 전신인 배양학당이 있던 고을이다.

배양학당은 금마면의 갑부로 알려진 이노철·이노윤 형제가 설립하였는데, 일제치하에서 교육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던 곳이다. 두 형제는 주변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서 존경을 받은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해방 후에는 어려운 주민들을 대신하여 금마면 전체의 세금을 두 번씩이나 대납해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한 두형제의 집에서 모를 심거나 큰일을 하는 날은 마을전체가 모두 달려와서 거들었다. 이 날은 두 형제의 큰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노철·이노윤 형제는 배양학당 바로 옆에서 처마를 맞대고 살았다. 그런데 두 형제의 집 마당 한쪽에 구렁이를 보호하던 나무누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나무누리를 ‘업누리’라고 불렀다.

▲ 배양학당터
우리 민속에 보면, 한 집안의 살림을 보호하거나 보살펴준다고 하는 동물을 ‘업’이라고 했다. 흔히들 업이 집안에 있으면 그 덕이나 복으로 집안의 살림살이가 늘어난다고 믿었다. 이노철·이노윤 형제 집안에 전해지던 업누리는 바로 집안의 재산을 지켜주는 구렁이의 거처였다.

두형제의 마당에 업누리가 전해오던 이야기가 전설처럼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대략 150여년 전의 이야기이다. 배양골에 살았던 청주이씨 종가는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쌀독에 양식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큰며느리가 시집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큰며느리가 아침을 짓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서려는데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쌀독 부근에서 나왔다. 며느리가 나타나자 구렁이는 울타리 밖으로 몸을 피하며 마당 한쪽에 있는 나무누리로 들어가고 있었다. 구렁이의 몸통도 보통구렁이보다 클 뿐만 아니라, 눈과 머리가 나비형상을 하고있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며느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쌀독을 열었다. 그런데 지난밤까지 바닥을 들어냈던 쌀독에 쌀이 가득했다. 깜짝 놀란 며느리는 방으로 들어와서 이 사실을 어른들께 알렸다.

며느리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른들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을 지켜주고 재산을 늘려줄 업이 들어왔다고 믿었다. 그 뒤로 나무누리를 정성껏 보호하고 이름도 업누리로 불렀다. 해마다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나무누리 위에 비가림을 위한 지붕도 만들어 주었다. 나무더미가 삭아서 가라앉은 부분은 나뭇잎을 다시 긁어다 쌓았다. 정월초하루나 명절 때는 음식을 해서 업누리 앞에 갖다놓고 섬겼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후로 청주이씨 종가의 가세가 수대동안 번창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전해지던 업누리는 일제시대에 퇴비증산 장려를 하며 해체를 요구했지만 집안에서는 계속 보존해왔다. 그후 1970년대에 새마을 사업으로 주변정화를 할 때에 업누리가 철거되었다.

이노철·이노윤 형제가 선행을 베풀며 나란히 살았던 집터가 지금은 밭으로 변해있고, 업누리가 있던 마당은 잡초가 무성하게 뒤덮여있다. 두형제의 아름다운 업적과 함께 업누리 이야기만 집안과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 신비스럽게 전해지고 있다.

김정헌<동화작가, 금당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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