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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관전(觀戰) 훈(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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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관전(觀戰) 훈(訓)
  • 한관우 기자
  • 승인 2008.11.1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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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전만수<출향인(갈산). 경제학박사>

▲ 전만수<출향인(갈산)·경제학박사>
“미국에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하나의 미국이 될 것입니다. 당파주의와 편협함의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에이브러험 링컨대통령이 호소했듯이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가치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오늘밤 우리 자녀가 다음 세기에 어떤 변화를 목격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지난 4일 밤 제44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 당선자가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행한 당선 연설은 그가 기치로 내세웠던 ‘변화’와 ‘통합’의 정치철학을 적절하게 투영하고 있다. 10개월의 대장정 끝에 이날 미국인들은 47세의 흑인 상원의원 그것도 초선의원인 버락 오바마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선거혁명을 이루어 냈다. 선거인단 수로는 하프게임 이었으며, 지지율로도 52% 대 46%의 압승이었다. 민주주의 본산으로 미국은 역시 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여 주었으며, 세계의 슈퍼파워로서의 위상이 위기를 맞았다 싶을 때 ‘변화’를 택함으로써 팍스아메리카나의 건재를 과시했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은 분명 정치사적 대사건이다. 1776년 미국 건국 이래 232년 만에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탄생 시킨 것은 1863년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의 완결로 미국만의 가치를 넘어 인류사적 가치를 함의하고 있는 대사건임에 틀림없다. 역시 미국은 미국 이다.

첫째, 인종의 벽을 넘는 위대한 미 국민의 선택에 찬사와 경의를 표한다. 백인의 43%가 오바마를 55%가 매케인을 지지한 결과치만을 가지고 50%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이유로는 적합지 않다. 인종차별의 원조격인 미국이 최소한 과반이 피부색에 의한 편견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결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64년 민권법의 통과로 인종차별이 제도적으로 금지되어왔으나 사회 곳곳에 차별이 상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로 최소한 그것이 나쁜 것 이라는 명제에는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국제결혼이 연간 4만여 쌍에 이르러 다문화가정이 늘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짚어 볼 때 피부색과 경제력에 대한 보이지 않은 차별과 편견이 도처에 깔려 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사회문제가 된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 공연 허용 여부가 가수 조용필은 되는데 왜 가수 인순이는 불허 되는지 결정과정에 편견이 작용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차별과 편견이 없도록 제도 개선실천 노력이 더없이 요구된다.

둘째, 게임의 룰(rule)을 지키는 성숙된 정치문화가 부럽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신사 정치가 보편화 된 진정한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는 더욱 크다. 공화당 후보였던 메케인은 ‘오바마 당선확실’이라는 언론 보도 후 15분 만에 깨끗한 승복연설을 해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는 열심히 싸웠습니다. 패배는 여러분이 아닌 저의 몫입니다.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 미국인들은 위대한 국민입니다. 오바마는 나의 대통령입니다” 매케인의 패배연설 또한 또 하나의 역사였다. 역대 전직대통령들 간의 관계를 상정해 볼 때 우리에게는 너무 부러운 광경이다. 전직 대통령들 간에 사이가 좋은 사람이 없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유아독존적 비민주적 사고의 상징이다. 민주화 동지라고 자칭을 하는 YS와 DJ의 갈등이나, ‘골목길 강아지’ 운운하며 막말로 인정을 하지 않는 전직 대통령들 간에 벌어지는 볼상 사나운 모습을 강제로 봐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다.

셋째, 경험보다는 비전을 선택한 미국민의 진취성을 엿본다. 오바마는 미 대통령 당선자중 네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다. 47세의 초선 상원의원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초년생이다. 그럼에도 미 국민은 노회한 매케인 보다는 신출 나기 오바마를 선택했다. 경험보다는 비전과 리더십을 우선 했다고 볼 수 있다. 관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경륜의 테크닉션 보다는 패기의 젊은 리더에게 팍스아메리카나의 재건을 맡긴 격이다. 미국이 태생적으로 배태하고 있는 모험정신, 43세의 젊은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 정신’의 산물인가? 우리의 관점으로는 납득키 어렵다. 자칫하면 애송이 떠버리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격이라고 우려하지 않았겠는가?

넷째, 변화와 통합을 바라는 국민의 승리가 더욱 부럽다. 물론 민주당 후보의 승리이나 이념으로 뭉친 정치집단의 승리라고 하기보다는 변화와 통합을 원하는 풀뿌리 국민의 승리로 통합과 탈이념의 실용주의의 대전환이 벌써 시작됐다.

다섯째, ‘꿈은 이루어 진다’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맛본다. 버락(스와질리어로 ‘신에게서 축복받은 사람’)은 꿈을 이뤘다.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흑인 소년 소녀와 백인 소년 소녀가 팔장을 끼고 형제자매처럼 걷는 그날이 오리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1963년 연설)이 2008년 11월 4일 오바마에 의해 구현된 것은 인류사적 쾌거이고 음지의 양지를 향하는 희망의 보루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소수(미국 시민점유 12%) 흑인의 꿈의 실현을 넘어 전 인류적 마이너리티의 우상이며 삶의 원천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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