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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거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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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거리 산책
  • 홍성신문
  • 승인 2008.04.28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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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복형(홍주초등학교 교사)의 ‘서송(瑞松)’

그냥

김주현 (시인·태안 해양경찰서 근무)

오르고 오른 이 산 어디에도
부끄러움은 없다
한 걸음 부족하여
두 걸음 내딛은
이 산 언저리에
그냥 앉아 있음이 자랑스럽다

시집 ‘시간의 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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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그냥]이라는 말처럼 정답고 살가운 말도 그리 흔하지 않다. ‘그냥’이라 함은‘모양 그대로’, ‘그대로 줄곧’, 그런 의미이다.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리면서 청랑하게 외쳐대는 물소리처럼 맑고 밝은 마음의 씀씀이가 녹녹하게 숨어있는 듯한 말이다. ‘그냥 두어라!’ 이 말 한 마디 속에는 이 세상 모든 존재물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현명하고 자유로운 무한의 진면목이 자리하게 한다. 따라서 ‘산’은 [그냥] ‘산’일뿐이다. 그러하거니와 ‘오르고 오른 이 산 어디에도/부끄러움은 없다’ ‘산’은 [그냥] ‘산’일뿐 어떠한 치장이나 가식이 없다. 놓여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산’을 ‘산’이라고 불렀을 때 이미 그 본래의 ‘산’은 없어지고 ‘산’이라고 부르는 자의식 속의‘산’이 된다. ‘산’이라고 부른 사람은 ‘산’ [그냥] 그대로를 [그냥] 그대로이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무’라고 불렀을 때 어떤 사람은 소나무를, 어떤 사람은 밤나무를, 어떤 사람은 대나무를 생각할 수 있듯이 ‘산’을 ‘산’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는 각자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산’을 떠올린다. 그때는 이미 각자의 의식과 더불어 살아온 총제적인 ‘산’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혹은 체험적인 삶속의 부끄러운‘산’이 된다. 그러나 최초의 ‘산’에는 어느 누구의 의식이나 인식이 없기 때문에 순수한 자연으로서의 ‘산’으로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므로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한 걸음 부족하여/두 걸음 내딛’을 수밖에 없다. 부끄러운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산’ 본래로 젖어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다.

구재기<시인·갈산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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