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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에 恨을 담아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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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에 恨을 담아 ‘훨훨’
  • 정진옥 기자
  • 승인 2007.09.05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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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호남살풀이 춤 이수한 유동례 씨

홍성국악협회 유동례(54) 무용분과장이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 춤을 이수했다. 지난달 15일 전주에서 열린 제7회 이수자 시험을 통해서다.

유 씨는 지난해부터 주말마다 전주의 ‘최선 춤 전수관’을 오가며 춤을 배웠다. 스승은 호남살풀이 춤 기능보유자인 최선(본명 최정철)이다.

#춤이 좋았던 어린시절
어려서부터 춤이 좋았다. 6살 무렵 어머니가 살풀이를 추는 것을 접했다. 수건을 넘기는 모습에 반했다. 그때 처음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교직에 몸담았던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에 무대에 발도 한번 디뎌보지 못했다.

#홍성에서 ‘인생의 2막’
그의 고향은 충북 옥천. 18년 전 남편 우종일(홍성여고 교사) 씨를 따라 홍성에 둥지를 텄다. 아이들이 자라고 혼자 지내야하는 시간이 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울증이 심해 죽을 고비도 넘긴 그다.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찾아내는 것보다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을 참아내기가 버거웠다. 춤에 대한 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더 이상 그를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든든한 후원자로 힘이 돼줬다.

“소질은 있는 것 같은데 어려서 아버지가 못하게 하니까. 그때의 한이 쌓이고 쌓였던 가 봐요.”

춤을 통해 인생 2막이 올랐다. 47세 되던 해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회에서 산조 춤을 배운 게 시작이다. 1남4녀 중 맏딸인 그는 어려서 배우지 못하고 희생한 것에 대한 한이 많았다. 그 한을 춤으로 풀어내면서 숨통이 트였다.

#호남살풀이와의 인연
홍성에서 1년을 배우다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홍성과 대전을 오가기를 반복하며 3년을 보냈다. 서울 국립국악원에도 한 2년간 몸담았다. 그러다 지금의 스승을 만났다.

“스승님이 공연을 해보자고 제의했어요. 처음에는 이 춤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일단 편한 마음으로 70여명이 참가하는 연수에 참가했죠.”

호남살풀이 춤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연수는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계속됐다. 산고 끝에 시험대에 올랐고 결과가 좋았다.

유 씨는 지금도 ‘춤에 혼이 담기지 않으면 둥둥 떠다니는 풍선이야’라는 말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스승이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다. 그만큼 혼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호남살풀이 춤을 이수하면서 지도자 자격을 얻은 그이지만, 지도자로 나서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깊이 있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 노련해질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뼈 속 깊이 맺힌 한을 춤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는 마지막까지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고 싶은 게 바람이다.

“동작만으로는 춤의 진수를 보여줄 수 없어요. 아직도 멀었죠. 춤 같은 춤을 추기까지는….”


♠호남살풀이 춤이란~호남지방의 무악인 살풀이 곡에 맞춰 추는 춤으로 1955년 최선이 첫 선을 보였다. 지난 1996년 3월에는 전북무형문화제 제15호로 지정됐다. 손에 수건을 들고 추는 이 춤에는 한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으며, 맺고 풀고 얼르는 묘미와 절제미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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