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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급 영정, 400년 만에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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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급 영정, 400년 만에 햇빛
  • 한관우 기자
  • 승인 2007.08.3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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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정충사, 임득의 장군 초상화 "역사적 가치 있다"

서부면 판교리 정충사에 보관 중이던 청난공신 평성군 임득의(林得義) 장군(1558-1612)의 초상화가 40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이 초상화는 1680×923㎝ 크기로 비단에 그려졌으며, 선조 37년(1604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596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토벌한 임 장군의 공을 기린 청난공신상(淸難功臣像)이다.

영정은 그동안 임득의 장군의 사당인 정충사 내에 보관되어 오던 중 후손들과 충남역사박물관이 문화재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면서 보물급 영정임이 밝혀졌다. 특히 임 장군의 초상화는 얼굴묘사법에 있어 배채(背彩)를 얇게 했고, 얼굴의 입체감도 인중 등 어둡게 보이는 부분을 더 어둡게 묘사하는 기법과 광대뼈 등의 부위를 더 붉고 강하게 강조하는 시각적 명암법을 이중적으로 사용했다. 또 신체와 관복은 짙고 각진 선을 사용함으로써 평면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17세기 초반 공신상의 제작기법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같은 시대에 제작된 호성공신상(扈聖功臣像)과 선무공신상(宣武功臣像)은 몇 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나 청난공신상은 아직까지 보물로 지정된 것이 단 한 점도 없어 제대로 연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 장군은 부사 임식의 둘째 아들이며 임득인의 동생이다. 선조 29년(1596) 병신 7월 6일 종실 이몽학이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켜 인접한 임천, 정산, 청양, 대흥 등을 함락하고 홍주성을 침범하자 홍주목사 홍가신을 도와 반군을 소탕한 공으로 청난공신삼등(淸難功臣三等)에 기록됐다. 벼슬은 충청수우후(忠淸水虞侯)에서 경상우도병마 절도사와 승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지 훈련원사를 지냈다. 무오년에 태어나서 만력 임자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소는 서부면 판교리 청룡산에 있고 묘소 앞에는 그가 세상을 떠난 304년 후인 정사년에 지산 김복한이 지은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 장군의 전승비인 홍양정난비와 비각이 금마천(말무덤)에 세워져 있으며, 임 장군의 묘역(330㎡)만 충청남도 문화재 제34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사당인 정충사는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임 장군의 영정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평성군파 종가의 셋째 아들인 순환(55․ GS건설 중부지사장)씨는 임 장군의 업적을 재조명하여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사료를 찾는데 매달렸다고 한다. 영정이 400여 년 동안 온전히 보관될 수 있었던 것도 설, 추석, 단오 등 1년에 다섯 번밖에 영당의 문을 열지 않아 영정에 대해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반면에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향 서부에는 89세의 노모가 영당을 지키며 장남 철환 씨가 매주 이곳을 찾고 있다고 전한다.

임득의 장군 영정에 대한 가치를 밝혀 낸 충남역사박물관은 보물급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보물’지정을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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