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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처녀바위 '노새악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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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처녀바위 '노새악시 바위'
  • 김정헌<동화작가·구항초 교감>
  • 승인 2007.08.2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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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북면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우리고장에 있는 용봉산을 불교문화 유산의 보물창고라고 부른다. 그만큼 용봉산에는 불교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다. 용봉산 곳곳에 남아있는 유적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용봉산 골골마다 붙여진 이름과 많은 전설들도 대부분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다.

홍성군 문화유산 해설사인 한건택님과 전화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용봉사에 있는 “노새악시 바위”에 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건택님의 고향은 용봉사 바로 아래 마을인데, 어른들은 옛날부터 용봉사 절에 있는 마애여래입상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었다.
한건택님이 전해주는 노새악시 바위 얘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용봉산에는 용봉사(龍鳳寺)라는 유명한 절이 있다. 용봉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바로 아래에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18호인 “용봉사 마애여래입상”이 있고, 용봉사 뒤편으로는 보물 제 355호로 지정된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 용봉사 마애여래입상.
옛날부터 용봉산 아래 마을사람들은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을 부를 때, “노새악시” 바위라고 불러오고 있다. “노(老)”라는 말은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고, “새악시”라는 말은 “색시”라는 뜻의 사투리이다. 즉 나이들은 처녀바위라는 뜻이다.

옛날에 용봉산 기슭에는 두 남매가 살고 있었다. 누나인 딸과 동생인 아들은 모두가 힘이 장사였다. 특히 누나인 딸은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도, 결혼상대가 없었다. 주변 총각들은 힘자랑만 하는 노처녀에게 감히 장가 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노처녀 역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은 힘이 장사인 노처녀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곤 했다. 노처녀가 남자로만 태어났다면 훌륭한 장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 남매를 키우던 홀어머니는 용봉산 산신령님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았다. 두 남매 중에서 하나만 택하라는 명령이었다. 아들을 살리든, 딸을 살리든, 빨리 결정해서 실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홀어머니는 여러 날 동안 고민 끝에 두 남매를 불러 앉혔다. 두 남매에게 산신령님의 명령을 알렸다. 지금부터 시합을 하는데 지는 쪽이 목숨을 내놔야한다는 사실도 알렸다. 누나는 용봉산 봉우리에 앞치마로 돌을 날라서 성을 쌓게 하고, 동생은 쇠신을 신고 한양까지 다녀오는 시합을 시켰다.

▲ 용봉산 성터
두 남매는 목숨을 걸고 시합을 시작했다. 홀어머니는 마음을 졸이며 두 남매의 시합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동생인 아들이 승리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녁때가 되면서 딸인 누나가 쌓는 성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바위 돌 한개만 얹어놓으면 성은 완성이었다.

홀어머니는 눈이 아프도록 한양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아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아들이 시합에서 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했다. 홀어머니는 마음이 급했다. 마지막 성돌을 놓기 위해 바위를 들고 걸어가는 딸에게로 다가갔다.

“얘야, 네 동생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나보구나. 이 시합은 네가 이긴 거나 마찬가지로구나. 하루 종일 굶어서 배가 고플 텐데 이걸 좀 먹고 쉬었다가 하려무나.” 홀어머니는 콩 누룽지를 딸에게 내밀었다.

딸은 한양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마음이 놓였다. 앞치마에 들고 있던 바윗돌을 내려놓고 어머니가 내미는 콩 누룽지를 먹기 시작했다.

딸이 정신없이 콩 누룽지를 먹을 때였다. 한양으로 출발한 아들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딸은 먹던 누룽지를 내던지고 옆에 있던 바위를 들어올렸다. 바위를 들고 일어서면서 배에 힘을 주었다.

아뿔사!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배에 힘을 주자마자 갑자기 설사가 나오면서 더 이상 바위를 들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설사로 인해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동생이 골인 지점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시합은 동생의 승리로 돌아갔다. 약속대로 누나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너무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딸은, 후에 용봉사 뒤편에 있는 바위로 변하여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억울하게 죽은 누나라고 생각하여 “노새악시 바위”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른 후에는 동생도 목숨이 다하여 저세상으로 떠났다. 동생은 용봉사 아래쪽에 있는 바위가 되어 부처로 태어났다. 사람들은 용봉사 마애여래입상을 남동생바위라고 불렀다. 용봉산 정상부근에 흩어져있는 성터 역시 누나가 쌓은 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용봉산 정상의 성터와 용봉사를 사이에 두고 아래위쪽에 각각 서있는 마애여래입상은, 오랜 세월 두 남매의 성 쌓기 전설을 간직한 채 오가는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고장에는 이와 비슷한 전설이 두 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했던 금마면 봉수산의 임존성과 장곡면 산성리의 주류성 축성과 관련한 전설이 비슷한 내용으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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