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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OC총회 > 끝내 풀지못한 `김운용 방해설'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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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OC총회 > 끝내 풀지못한 `김운용 방해설' 족쇄
  • 홍성타임즈
  • 승인 2007.07.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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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OC총회 > 끝내 풀지못한 `김운용 방해설' 족쇄
김운용회장과 장웅 IOC위원
'98년 제13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경기를 같이 관람하고 있는 김운용회장과 장웅 IOC위원./본사자료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평창이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더라면...'
국제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powerhouse)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운용(76)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은 5일 강원도 평창이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시도가 또 한번 물거품이 되면서 2010년 대회 개최권 획득 실패 책임론의 악몽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4년 전 프라하 IOC총회 때 평창이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2차 투표에서 밴쿠버(캐나다)에 3표차로 역전당한 뒤 역풍을 맞았기에 누구보다 평창 유치를 가슴 졸이며 바랐던 게 사실.

   당시 그는 IOC 부위원장에 출마해 당선됐고 평창은 밴쿠버에 아깝게 무릎을 꿇었다. 정부 관계자들의 불출마 요청 거부가 평창 유치 실패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후 유치를 방해했다는 의혹에 '돌팔매'를 맞았다.

   의혹으로 시작해서 결국 의혹으로 끝났지만 세계태권도연맹(WTF) 후원금 유용, 외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2004년 국회의원과 WTF 총재, 국기원 원장직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에는 IOC로부터 위원 자격정지 통보를 받자 `용퇴'를 선택했다.

   폭넓은 대인관계와 능숙한 외국어를 바탕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실력자에서 하루 아침에 야인 신세로 추락한 것이다.

   그에게 남은 공식 직함은 없다.

   하지만 평창이 '재수(再修)'에 실패함으로써 그를 짓눌렀던 심적 부담을 날려버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평창의 짐을 덜기 위해 조심스런 행보를 해왔다.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 총재였던 김운용은 지난 4월5일 신라호텔에서 국제태권도연맹(WTF) 총재를 겸하고 있는 북한 장웅 IOC위원을 만나 평창 동계올림픽, 인천 하계아시안게임 유치 협조를 당부했다. 그는 과거 친구들의 잇단 초청에도 두문불출하면서도 IOC내 `친(親)김운용계'를 활용해 평창 득표를 위해 물밑 로비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평창의 꿈이 좌절되면서 `방해설'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싶었던 그는 불운과 지독한 인연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4년 전 그의 방해 때문에 유치에 실패했다며 분노했던 평창은 블라디미르 푸친 러시아 대통령과 거대기업 가즈프롬의 '강공'에 47-51로 역전패, 또 한 차례 눈물을 삼켰다.

   노회하지만 IOC위원 일부를 움직일 수 있었을 김운용이 IOC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평창은 어떻게 되었을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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