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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산중학교 설립에 얽힌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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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산중학교 설립에 얽힌 비화
  • 김정헌(동화작가, 구항초등학교교감)
  • 승인 2007.05.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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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湖明) 학교’ 뿌리 찾기(3)

개화기 이후에 우리지역 우국지사들이 가장 관심 있게 추진한 사업 중의 하나가 교육사업이었다. 1900년대 초기부터 홍성지역 곳곳에서는 사립학교 또는 학당들이 세워졌다.


그 당시에 세워진 교육기관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이름이 팔명학교(八明學校)이다. 홍성 지역에 명(明)자 돌림의 학교가 여덟 곳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이름이 정확하게 밝혀진 곳은, 홍성의 영명학교(永明學校), 갈산의 호명학교(湖明學校), 광천의 덕명학교(德明學校), 홍동의 동명학교(東明學校), 구항의 흥명학교(興明學校) 등이다. 이외에 결성에 보광학교(普光學校)도 있었다. 이 학교들은 오늘날의 초등학교로 맥이 이어지면서, 각각 연고지에서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호명학교의 김좌진과 덕명학교의 설립자인 서승태 선생은 교육사업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분들이다.
김좌진의 독립정신이 서려있는 호명학교는, 당시에 세워진 위치로 보면 갈산중․고등학교로 맥이 이어지는 셈이다.

당시에 갈산지역에는 안동김씨 문중의 기와집이 대략 40여 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갈산중학교 본관 자리에 서있던 아흔아홉 칸짜리 기와집이 대표적인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당시의 재력가인 김병안씨가 1920년대 초기에 지은 집이다. 김병안씨가 합덕에 있던 이천석지기 논을 팔아다가 지은집이라고 한다.

지금도 갈산중학교 정원에는 당시의 호화롭던 건물을 미루어볼 수 있는 여러 흔적들이 남아있다. 특히 집 주변으로 흐르는 물을 집안 정원으로 끌어들인 수로(水路)와 정자 기둥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육각형의 돌기둥과 향나무 등이 눈길을 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흔아홉 칸짜리 건물은 갈산과 서부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중학교 유치와 관련한 가장 큰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1950년 초기에 서부지역에서 이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시가로 쌀 900석에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이 건물을 뜯어다가 서부에 중학교를 짓기 위해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갈산지역 유지들이 들고 일어났다. 갈산에서도 중학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학교유치의 주도권과 건물까지 서부지역으로 빼앗기게 된 셈이었다.


당시에 갈산중학교 설립의 중심에서 역할했던 이건엽 옹의 증언에 의하면, 갈산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다. 갈산면장 등이 주동이 되어 궐기대회를 열었는데, 삽시간에 갈산면내 전체에서 천여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아흔아홉 칸짜리 건물을 지키고 갈산중학교 유치를 위한 결의와 모금운동을 시작 했다.
1951년 7월 21일에 열린 갈산지역 궐기대회 자리에서 쌀 400석 정도가 모금되었다.
갈산과 서부지역의 중학교 유치와 아흔아홉 칸짜리 건물계약 사건은 홍성군의 중요한 현안문제로 떠올랐다. 당시에 홍성군수가 중재자로 나설 정도였다.

결국 아흔아홉 칸짜리 매매계약은 파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갈산지역에서 계약 파기 조건으로 쌀 200석을 배상하고, 60칸 규모의 갈산우체국 관사 건물을 쌀 300석에 매입하여 서부지역에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갈산중학교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52년 12월 4일에 개교하였고, 아흔아홉 칸짜리 건물은 초기 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 당시에 건물 매입비 쌀 900석, 계약 파기 배상금 쌀 200석, 우체국 관사 건물 매입비 쌀 300석, 건물개조비용 쌀 100석, 책걸상 집기 구입비 쌀 20여석 등의 비용이 들어갔다. 이 비용은 우선 학교설립추진위원장이었던 김홍진회장이 채주가 되고, 이건엽 총무가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금능조합에서 융통했다. 그리고 모든 비용은 지역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쌀 한말 이상씩을 출연하고, 지역 유지들이 상당부문 제공하여 해결했다.

한발 빠르게 움직였던 서부지역에서는 갈산보다 1년 먼저 서부고등공민학교가 개교되었다. 1년 후에 갈산중학교가 개교되면서 재학생들은 갈산중학교로 편입되고 학적부도 갈산중학교로 이관되었다.
우리지역 모든 학교들은 이처럼 지역주민들과 선각자들의 뜨거운 애향심과 교육열로 만들어졌다. 우리고장 구국운동과 민족교육의 효시인 호명학교의 뿌리 찾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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