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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에 은혜갚은 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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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에 은혜갚은 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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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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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면 신기리 담양전씨 묘소 전설
홍성지역 전설에는 이 지역에 살았던 선조들이 지역의 자연현상이나 역사적 사실에 관하여 어떻게 이해하였는가가 나타난다. 또한 무엇에 가치를 두고 강조하였으며, 무엇을 바라고 꿈꾸며 살았던가가 나타난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설을 현대인의 합리적 사고로만 보지 말고,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의식의 밑바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최운식, 「홍성의 전설과 이해」에서)

전설은 옛날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전해지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제시되고, 개별적인 증거물을 갖고 있다. 전설은 증거물의 성격상 일정한 지역을 발판으로 하기 때문에, 대체로 지역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전국 여러 곳에서 동시에 전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고장 홍성에도 다른 지역과 내용이 비슷한 전설들이 여러가지 있다.

아마도 독자들 중에는 어려서 사냥꾼으로부터 쫓기던 노루를 나무꾼이 숨겨주고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고장 홍성에도 이와 비슷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홍성에서 청양방면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철길 건너 홍성읍 구룡리가 나온다. 구룡리를 막 벗어나면 암소고개가 나온다. 암소고개 고갯마루에 있는 양쪽 산이 만경산이다. 홍성과 청양을 잇는 아스팔트 길은 만경산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암소고개가 도로공사로 인해서 많이 낮아졌다. 옛날에는 상당히 높은 고개였고 짐승들이 많이 나타나는 험준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암소고개 고갯마루 왼쪽 편에 있는 만경산이 바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암소고개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서 빼뽀저수지 가는 길이 나온다. 길 초입에 있는 만경산 중턱쯤에 담양 전씨 선대 묘소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홍성군 홍동면 신기리이다.

대략 500년쯤 지난 얘기라고 한다.

홍성군 구룡리에 살던 전실(田 實)이라는 분이 만경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을 때였다. 전실은 땅에 수북이 떨어진 솔가리(말라서 땅에 떨어진 솔잎)를 긁어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건너편 골짜기에서는 사냥꾼들이 노루를 몰기 위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열심히 솔가리만 긁어모으고 있었다.

전실이 한참동안 나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후다닥하는 짐승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편 골짜기에서 사냥꾼에게 쫓긴 노루가 전실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노루는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전실이 모아놓은 솔가리 더미 속으로 푹 파고 들어갔다.

전실이 모아놓은 솔가리 더미는 노루가 숨을 만큼 충분한 양이 되지 못했다. 노루가 솔가리 속으로 몸을 감추긴 했지만, 꼬리부분이 바깥으로 한 뼘 쯤 보였다. 노루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전실은 얼른 다가가서 다른 쪽 솔가리를 옮겨다가 꼬리부분을 감춰주었다.

조금 후에 사냥꾼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사냥꾼들은 숨찬 목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여보시오, 이쪽으로 노루 한 마리가 도망쳐 왔는데 못 보았소?”

“예, 방금 전에 저쪽으로 달아나더군요.”

전실은 태연하게 반대편 방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사냥꾼들은 전실이 가리키는 쪽으로 황급하게 달려갔다.

사냥꾼들이 사라진 만경산은 또다시 조용해졌다. 전실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계속 나무를 했다.

노루는 주변이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 솔가리 더미를 헤치고 나왔다. 전실 앞에서 잠깐 머뭇머뭇하다가 뒷산 골짜기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 뒤로 한달 쯤 지났을 때였다. 전실의 부인인 이 씨가 마을 샘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 씨는 전실의 본부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두 번째로 얻은 부인이었다.

이 씨가 한참 빨래를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누가 치맛자락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빨래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뒤쪽을 바라보던 이 씨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노루 한 마리가 치맛자락을 입으로 물고 잡아끄는 것이었다. 나를 따라오라는 시늉 같았다.

이 씨는 깜짝 놀라긴 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노루가 왜 이럴까?’

이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빨래를 멈추고 노루를 따라나섰다. 노루는 길잡이 하는 것처럼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몇 발짝 걷다가 뒤를 자꾸만 돌아다 보았다. 이 씨가 뒤에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눈치였다.

노루는 마을 모퉁이를 돌아서 만경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더니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연안이씨를 바라보더니 앞발로 땅바닥을 툭툭 치며 금을 그었다. 사람이 들어갈 면적만큼 줄을 그어놓고 산속으로 몸을 감췄다.

이 씨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인 전실에게 이 사실을 자세히 알렸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오? 참으로 희한한 일이로구먼.”

전실은 순간적으로 만경산에서 구해준 노루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전실은 이 씨와 함께 노루가 표시해준 자리를 찾아가보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양지바르고 청룡백호가 살아있고, 산소자리로는 그만이었다.

“허허, 노루가 우리 아버지 산소자리를 잡아준 것이 틀림없구려.”

전실은 얼마 전에 노루 구해준 얘기를 부인에게 했다. 이 씨도 노루가 은혜를 갚기 위해 조상의 산소자리를 잡아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실 부부는 그렇지 않아도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항상 걱정이었다. 돌아가시면 어디에 산소를 써야할지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던 중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실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전실은 아버지의 산소를 노루가 잡아준 자리에 썼다. 노루가 잡아준 자리에 묻힌 주인공은 전실의 아버지 전윤수(田尹穗)이다.

후에 후손들은 노루를 구해준 주인공 전실과 큰 부인, 그리고 작은 부인 이 씨의 묘소도 이곳에 모셨다.

담양 전씨 후손들은 노루가 잡아준 산소자리와 주변을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 조상들의 산소를 이곳에 모시고 해마다 시제를 지내고 있다.

김 정 헌
동화작가
구항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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