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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칡뿌리와 봄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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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칡뿌리와 봄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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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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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광 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지난봄에 캐어 말려 겨우네 다려먹던 칡뿌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마른 칡뿌리 한 움큼 넣고 끓인 물을 술 마신 이튿날 한 잔 가득 마시면 속이 시원하게 가라앉기에 두고두고 끓여 마셨던 내 겨울 양식이 다해갔던 것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늦잠 자는 친구 두엇을 깨워서 산행을 핑계 삼아 불러내고는 가야산으로 향했다.

한겨울에 무슨 엉뚱한 짓이냐는 친구들을 달래느라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두어병과 두부와 김치를 사들고 우리 셋은 등산로 초입의 칡밭으로 들어섰다.

겨울 아침 날씨가 차가웠다.

괭이질을 해보니 한 뼘 가까이 땅속은 얼어 있었고, 그 한뼘 깊이의 언땅을 파내고서야 칡뿌리가 뻗어 들어간 속흙이 부드럽게 나타났다. 다행스럽게 농토로 가꾸었던 땅이기에 땅속이 부드러웠고 산속같이 다른 나무뿌리들과 뒤엉켜 경쟁하지 않고 땅 속으로 수평으로 길게 몇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일단 언 땅만 걷어내면 칡뿌리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캐낼 수 있었는데 칡뿌리 캐는 일이 처음인 친구들은 땅 파는 일들이 서툴기만 했다.

서툰 대로 교대로 해가면서 삽질과 괭이질을 해가다보니 어느덧 짧은 겨울 해는 청수리 너머로 떠올랐고 찬바람 속에서도 등속 속옷이 촉촉하게 땀이 배어오고 있었다.

칡넝쿨은 줄기 마디마디에서 만 닿으면 뿌리가 나와 다시금 사방으로 어어지는 잔 줄기를 뻗어내기에 뽑아도 결코 죽지 않는다.

몇 년이면 뽑았던 자리가 또다시 칡넝쿨로 뒤덮여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 어느산을 가봐도 칡넝쿨은 무성하게 자라고 내 술 마신 다음날 마실 수 있는 일용할 양식 또한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다.

모처럼 맞이한 휴일날 우리는 산행 대신 칡뿌리 캐는 작업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뒤집혀진 언 땅 속에서는 이미 봄이 돋아나고 있었다.

이름모를 풀뿌리 마디 끝에는 파란 싹이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파냈던 흙을 대충 메우고 그 속에 준비해 간 마열매를 하나씩 심어줬다. 이게 올봄부터 마 싹이 움터 한여름에는 왕성하게 자라나리라.

가을쯤에는 친구들과 다시 와서 살찐 마뿌리를 수확하리라.

봄은 어느새 가까이 올라오고 있었다.

남풍에 기러기 떼가 가야산 너머 북쪽 하늘로 날아간다.

봄은 그렇게 땅 속으로 땅 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봄맞이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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