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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삼월, 그 날의 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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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삼월, 그 날의 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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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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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식 홍성보훈지청장

삼월은 어둡고 추웠던 한 겨울을 보내고 다가오는 파릇한 새봄을 머리속에 그리며 새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달이다.


양지 바른 언덕에는 해말간 햇살과 온유한 기운이 감돌고 수줍은 새싹이 고개를 내미는 삼월은, 분명 우리에게 아련한 그리움과 정겨움으로 다가서는 ‘희망의 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부터 86년전, 기미년 3월, 우리 조상들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울부짖었으니 그 노도의 물결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새로운 분수령을 이룬 역사적인 달이기도 하다.

1910년 한일합방이후 일제는 총검을 앞세운 폭력정치로 백성을 탄압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토지조사령을 발동하여 부당하게 조상대대로 지어오던 농토를 수탈하여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핍박을 받게 되자 그간 쌓이고 쌓였던 민족의 울분이 드디어 폭발하게 된 것이다.

우리 충남에서도 독립만세운동사의 금자탑으로 평가되고있는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을 비롯하여 대전, 천안, 아산, 예산, 당진, 홍성, 청양, 보령, 서천 등 전지역에서 크고 작은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도내에서는 160여회에 12만명이 넘는 인원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독립만세를 외치다 일경의 총검에 의하여 현장에서 순국한 인원만도 180여명, 체포되어 옥고와 고문을 당한 인원이 5천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같이 선열들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투쟁한 결과 조국의 광복은 이루어졌으나 해방후 남북이 민족주의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나뉘어 민족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외세의 개입에 의하여 분단된 국가로서의 미완성의 광복이 되고 말았다.

금년은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일제의 아픈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일제의 강제징용문제는 물론이고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또다시 다카노 주한 일본대사가 3.1절을 며칠 앞두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준비된 망언을 하는가 하면 이어서 일본 시마네현 인터넷 홈페이지에 ‘돌아오라 다케시마’란 사이트를 설치하고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획책하고 있는 현실이다.

독도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자존이며 민족혼의 상징이다.

우리는 일본의 과거사는 용서할 수 있으되 결코 이와같은 역사적 사실만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선열들이 일제의 갖은 고문과 압제속에 목숨을 바쳐 지켜낸 조국이다. 우리가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번영된 조국의 하늘아래 태극기를 휘날리며 자유와 행복을 구가할 수 있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우리 모두 삼월 하늘에 어려있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선열들의 뜨거운 민족정기와 애틋한 나라사랑의 정신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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