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태어난 아이 - 금마면 가산리 김호의 묘
상태바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태어난 아이 - 금마면 가산리 김호의 묘
  • 홍성신문
  • 승인 2024.03.25 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의 재미있는 묘자리 전설을 찾아서 2
건재산을 넘어 오던 옛 고개. 건재산은 금마면 가산리와 예산군 응봉면 건지화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 고장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 가야마을은 해발 186m인 건재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건재산은 금마면 가산리와 예산군 응봉면 건지화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건재산에는 서낭재라는 높은 고개가 있는데, 옛 시절에는 응봉면 건지화리에서 건재산을 넘어와 홍성장으로 통하던 중요한 교통로였다.

옛날부터 가야마을은 광산김씨 집성촌이었다. 가야마을을 감싸고 있는 건재산 남쪽 기슭 7부능선 쯤에 광산김씨 선무랑공파의 제일 윗대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묘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가야마을에 처음 정착했다는 김호(金頀)이다.

김호는 수원도호부사와 경주부윤을 지낸 아버지 김영남(金頴男)과 어머니 안동권씨의 2남 중에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김호는 태어난 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가야마을로 숨어 들어와 살아야 했다.

가야마을 광산김씨 집안에는 가야마을로 숨어들어온 김호와 관련한 일화가 전설로 재미있게 전해온다. 옛날부터 광산김씨 집안에 전해오는 얘기로는, 김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고 한다.

김호의 부모님은 예사 아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기쁨과 기대보다는 큰 걱정이 앞섰다. 만약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임금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장차 임금에게 반역할 인물로 부각 되어 아기에게 큰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금마면 가산리 건재산 기슭에 있는 김호 산소 모습. 

아버지는 아기의 장래가 큰 걱정이었다. 여러 궁리 끝에 아무도 모르는 산골에 숨어 살도록 주선했다. 이렇게 아기는 어린 나이에 건재산 기슭 가야마을로 숨어들어와 살면서 광산김씨 선무랑공파(宣務郎公派)의 파시조가 됐다. 이상 내용은 가야마을에 사는 광선김씨 제일 연장자 김한수 옹이 들려주는 전설이었다. 어린 시절에 집안 어른들을 따라 시향에 갈 때면 묘의 주인공에 대한 전설을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실제로 김호의 묘비 뒷면에는 위 전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흥미를 끈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앞부분 생략) 김호의 아버지는 수원도호부사와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정부인 안동권씨이다. 김호는 1574년 아버지 김영남과 어머니 안동권씨의 2남 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장이 8척이나 되며 인물이 출중하고 남달리 영리하고 재주가 있었다. 아버지 김영남은 평소 전쟁과 사화로 세상의 어지러움이 아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했다. 고심 끝에 은밀한 곳에 별채를 지어놓고 외부 출입을 금지하며 예기와 효경을 공부하게 했다. 20세가 되자 서울 명문가에서 청혼이 많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향리의 선비가와 혼인한 후에 집과 논을 마련하고 홍주 가야곡에 은거하도록 했다.(뒷부분 생략)

묘비의 기록을 보면 김호는 체격이 좋고 재주가 출중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아들이 벼슬길에 나가면 어지러운 세상에 휩쓸리며 십중팔구 큰 시련을 겪을 것을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초야에 묻혀 평온한 삶을 택하도록 주선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이러한 사실이 세월과 함께 신비감을 더하며 날개를 달고 태어났다는 전설로 형상화된 것으로 보여 진다.

김호 묘비 모습. 김호 묘비 뒷면에는 전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김호의 묘는 원래 예산군 대흥면 금국리에 안장했는데 1999년에 금마면 가산리 가야마을로 이장해 왔다. 대흥에서 이장해 올 때, 묘를 파는데 회닫이 한 석회가 단단하게 굳어서 돌을 뚫는 기계를 동원해야 했다. 단단하게 굳은 석회를 걷어내자 안개가 뿌옇게 서리더니 금방 사라지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김호의 유골은 300년이 넘었는데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김호 묘를 이장할 당시 직접 참여했던 김한수 옹을 비롯한 후손들의 목격담이다. 김호는 가야마을 광산김씨 선무랑공파 후손 중에 제일 연장자인 김한수 옹의 13대조이다.

김호는 생전에 부인 안평이씨와 사이에서 7남 2녀를 두었고 1646년에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장곡면 지정리에 산소가 있는 조선 개국공신 이서의 고손녀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