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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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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가 문제다
  • 조성욱 홍성군의사회장(홍성연합의원 원장)
  • 승인 2024.03.11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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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일 매스컴에서는 의대 증원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사직한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전공의들과 의사들은 의대 증원을 반대하고 있고, 정부는 면허정지와 경찰 고발 등으로 대치가 지속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의사들의 이기주의로 생각하고 있고, 의대 증원으로 대학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찬성하는 여론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과연 우리 의료를 좋게 만드는 길 일까요? 무엇 때문에 정부는 많은 의사들의 반대를 뚫고 강행하려고 하는 걸까요?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습니다.

현재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의 30%가 필수 의료를 지원하고, 나머지 70%는 미용을 비롯한 비 필수 의료에 지원한다고 합니다. 필수 의료 분야가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보상이 적고, 잦은 의료 사고로 지원하려는 의사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필수 의료과의 건강보험 수가는 원가의 70% 정도로 원가에 못 미치는 상태입니다. 의대생들이 보상이 많고 위험이 적은 비 필수의료 과를 선호하는 것은 비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2000명이 증원되면 어떻게 될까요? 600명은 필수 의료과에 갈 것이고, 1400명은 비 필수 의료과에 갈 것입니다. 낙수 효과로 필수 의료과를 늘리겠다는 건데요. 과연 할 수 없이 필수과에 지원한 600명은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있을까요? 1400명이 늘어난 비필수의료과 의사들로 인해 의료가 왜곡되지는 않을까요? 이로 인해 국민 의료비는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입니다.

의대정원 증원에 앞서 필수의료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첫째가 필수의료과 건강보험 수가 인상입니다. 소아과 오픈런을 얘기하고, 응급실 뺑뺑이를 얘기 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소아과 진료 수가가 너무 낮아서 하루 100명 이상을 진료해야 병원 유지가 되는 것이고, 응급실, 중환자실 수가가 너무 낮아서 병원들이 응급실, 중환자실 병상을 늘리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둘째는 필수의료과 의사들의 법적인 책임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병원급에 근무하고 있는 외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중환자실 담당 의사 중 1~2개 이상 소송이 없는 의사가 거의 없습니다. 환자 살리기도 힘들었는데, 재판으로 1~2년씩 시달리다 보면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과연 정부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요? 지난 10년간 의료계에서는 꾸준히 위의 상황을 지적해 왔습니다. 여태까지 입을 닫고 있다가 의대 증원이 답이라고 말하면서, 전문가들과 협의하지 않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의사들도 의대 정원 증원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수의료에 대한 대책을 세워 놓고 충분히 협의해서 필요한 만큼 늘리자는 것입니다.

지나친 정책은 문제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정원 3000명에서 2000명 증원. 누가 봐도 적절한 숫자는 아닙니다. 정부는 국립대 교수를 2000명 증원한다고 합니다. 교수가 팍팍 찍어낼 수 있는 물건도 아닌데 어디서 한꺼번에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찍어낸 2000명의 교수가 교육하는 2000명의 의사는 과연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 의료 환경은 외국 교포들이 귀국해서 진료, 수술을 받고 갈 정도로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빠르고 정확한 의료에 놀라고, 너무 싼 진료비에 놀란다고 합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정부는 의료계와 항상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얘기를 하면서 증원 2000명에서는 한 명의 물러섬도 없다고 합니다. 과연 대화할 생각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사직하고 있는 9000여 명의 전공의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의료를 지탱해야 할 의사들입니다. 그들에게 부디 절망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이번 일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현재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여론을 등에 업고 원전 철폐를 강행하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한 채 밀어붙인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당 82시간 밤새우면서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보던 젊은 의사들이 뛰쳐나왔습니다. 그들에게도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들을 위협하고 겁박하기 보다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진지한 얘기를 들어줘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같이 합심해서 필수의료를 살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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