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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목숨 살려준 보답으로 잡아준 은하면 목현리 청백리 이태중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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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목숨 살려준 보답으로 잡아준 은하면 목현리 청백리 이태중 묘
  • 김정헌 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24.03.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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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재미있는 묘자리 전설을 찾아서<1>
은하면 목현리에 있는 이태중의 묘. 조선시대 호조판서를 지낸 이태중은 올곧고 청렴한 행적으로 청백리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 고장 곳곳에 전해오는 구비설화 중에는 유난히도 풍수지리와 관련한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문가 출신 인물들의 묘자리에 얽힌 다양한 설화들이 재미있게 전해오고 있다. 홍성 곳곳에 자리 잡은 묘자리 중에는 어떤 집안의 어떤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김정헌 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이 전설의 현장을 격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 고장 홍성군 은하면 목현리 가운데말(2반)에 조선시대 호조판서를 지낸 삼산(三山) 이태중(李台重, 1694~1756)의 묘가 있다. 1980년에 제작된 홍성군지 과거급제자 편에는, ‘李台重韓山人號三山文科戶曹判書諡文敬公淸白吏(이태중 한산인 호 삼산 문과 호조판서 시문경공 청백리)’라고 기록되었다. 삼산 이태중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삼(子三)이고 호는 삼산(三山)이다. 황해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예조참판·부제학·호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특히 이태중은 관리로서 올곧고 청렴했던 행적이 높이 평가되어 청백리에 이름이 올라 있다. 청백리에 오를 만큼 청렴결백했을 뿐만 아니라, 임금 앞에서 소신껏 직언하여 흑산도와 갑산 등으로 여러 번 유배를 가기도 했다.

이태중의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했던 강직한 면모는 많은 일화를 남겼으며, 묘자리와 관련한 전설이 재미있게 전해 온다. 이태중이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할 때의 일이다. 관찰사 일행이 임지로 향하는 도중에 중화부사 이인강이 인사차 들렀다. “그대는 누구이던가?” 중화부사 이인강이 대답하기를, “저는 둥궁(정조를 가리킴)의 외사촌입니다”라고 답했다.

이태중이 눈을 부릅뜨고 “누구의 누구라고?”하며 되물었다. 중화부사는 전처럼 똑같은 말로 대답했다. 이태중은 중화부사를 물러가게 하고 즉석에서 장계를 올렸다. “중화부사 이인강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아 세상 물정을 분별하지 못하니 파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태중이 중화부사 이인강을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동궁의 외사촌으로서 세도가 집안이라는 것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집안의 권세를 등에 업고 자신을 소개하는 중화부사의 언행은 관리로서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관찰사 일행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 선천부사 최진해가 인사차 들렀다. 선천부사 최진해는 영조임금의 외가 집안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던 이태중이 선천부사 최진해의 정체를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던가?” “하관은 선천부사입니다.” 이태중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대가 선천부사인줄 모르고 물었는가? 그대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묻고 있노라.” 최진해가 겸손한 자세로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관은 문벌이 낮고 미약하되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어 분에 넘치는 소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또께서는 선천부사 최진해를 아시면 될 뿐이지, 하관의 일족과 친척은 왜 물으십니까? 하관의 일족과 친척이 시정의 사람이 아니면 곧 서리의 무리입니다. 비록 누구누구 이름을 들어 대답하더라도 사또께서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선천부사의 대답을 들은 이태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집안의 권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과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처신이 마음에 들었다. 선천부사를 후하게 대접하여 보내며 그가 하는 일마다 도와주었다.

이태중이 평안감사로 부임하여 관청 창고에 보관된 현물과 장부의 기록을 대조했다. 그런데 창고 관리를 책임진 관리가 곡식 수백 석을 빼돌린 사실이 밝혀졌다. 이태중은 관청 곡식을 축낸 관리에게 죄를 물어 매를 치려는데,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호소했다.

“감사 어른, 그 관리가 축낸 곡식은 개인이 횡령한 것이 아니옵니다. 지난해 흉년이 들어 우리 백성들이 굶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관청 창고의 곡식을 풀어 우리들의 생명을 구제한 것이옵니다. 개인 착복이 아니오니 선처해 주시면 저희들이 추수하여 갚겠사옵니다.”

이태중은 화를 내며 대답했다.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감사에게 알려 공식적으로 내보내야 할 것이다.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제 마음대로 관청 창고를 열어 선심을 썼단 말이냐? 그 죄 또한 무겁다는 것을 어찌 모르느냐?” 이태중의 호령에도 백성들은 물러서지 않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관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감사께 호소했사옵니다. 하지만 감사는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벌을 내리려 했사옵니다. 관리는 자기가 벌을 받겠다며 자의로 창고의 곡식을 푼 것이옵니다.” 이태중은 사정을 참작해 그 관리를 살려주었다. 그 대신 감사 자신이 3000냥을 낼 테니, 나머지는 곡식을 가져다 먹은 백성들이 추수하여 변상해 놓으라고 명령했다.

홍성읍 오관리 홍주문화회관 인근에 2020년 8월 세워진 이태중 청백비. 그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강직한 성품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 관리에게 다시 창고의 책임을 맡기고 빠른 시일 안에 장부와 현물을 맞춰놓으라고 지시했다. 백성들과 창고 관리인은 이태중의 일 처리에 감동하여 인사하며 물러갔다. 그 후 1년이 채 안되어 창고의 축난 곡식은 모두 채워졌다.

그 후 세월이 흘렀고, 이태중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하여 은거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태중은 의아한 표정으로 스님의 정체를 물었다. 스님이 대답하기를, “대감께서는 옛날 평안감사 시절에 창고 곡식을 축낸 관리를 살려주신 일이 생각나십니까? 소인은 그 관리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며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태중은 옛날 일을 되새기며 대답했다. “당시 부친의 일은 백성들을 위한 일이었으니 죄를 면할 만했소. 그런데 지금은 왜 나를 찾아왔는고?” 스님은 정중하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소인은 어려서 집을 나가 여러 절을 돌아다니면서 풍수지리에 관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부친을 살려주신 대감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대감의 묏자리를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옵소서.”

삼산공은 스님의 제안을 쾌히 승낙했다. 스님과 함께 산에 올라가 정해주는 장소를 산소 자리로 잡았다. 스님은 다시 품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주면서, “대감께서 보관하고 계시다가 병이 위독하실 때에 펴보시기 바랍니다”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후에 이태중이 죽음에 임박해 그 책을 펴보았다. 책 속에는 자신이 사망할 날짜와 장례일 등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또 그 산소 자리는 자손 9명이 급제하여 출세할 자리라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었다.

홍주성역사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 이태중을 기리는 전시회가 열렸다. 

이태중은 향년 63세로 숨을 거두기 직전에 빈소와 염습에 비단을 쓰지 말고 신도비도 세우지 말고 봉분도 일반 백성처럼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장례 절차는 물론이고 산소도 일반백성처럼 소박하게 조성했다. 지금도 언뜻 보아서는 조선시대 판서를 지낸 관리의 산소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산소 앞에는 그의 관직과 성명을 새긴 묘비만 달랑 세워놓았다.

이태중의 묘자리 덕분인지는 몰라도, 후손들 중에는 높은 관직과 명망 있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전해온다. 현대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故이태복 장관이 그의 직계 후손이다.

한편 홍성군에서는 2020년 8월 홍성읍 오관리 국도변 공원에 삼산 이태중의 청백비를 세우고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또한 홍주성역사관에서는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 이태중 특별전을 개최하여 그의 청백리 정신을 널리 전파한 바 있다.

다음은 삼산 이태중의 청백비 건립취지문이다.

<청백리는 조선시대 청렴 강직한 관리를 선정해 내리던 호칭으로, 관직 수행 능력이 뛰어나며 올곧고 깨끗한 관리의 상징으로, 오늘날 모든 공직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정표다. 호조판서를 지낸 청백리 이태중 선생은 옛 홍주 결성현 삼산리에서 출생했고 산소는 은하면 목현리에 있다. 이태중 선생의 강직 청렴한 성품과 백성을 사랑한 애민 정신을 함양하고 본받고자 온 군민의 정성을 모아 이곳에 청백비를 세운다. 2021년 6월 홍성군>

자료 출처
cafe,daum.net/renenshu71/gs6r/254.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www.culturecont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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