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60년째 가계부를 씁니다(2)
상태바
60년째 가계부를 씁니다(2)
  • 홍성읍 신경순
  • 승인 2024.03.01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편이 1975년 8월에 전투경찰에 가고 혼자 꼬마 아이들 밭둑에 재우며 열심히 농사일을 했습니다. 그때 심정은 마음이 착잡하고 어린아이들 키우며 밭 농사지을 것이 큰 걱정이 되었어요. 저는 헌 손수레를 4500원에 사서 딸아이들을 밭에 데리고 다니며 보리농사를 지어 보리 10가마니를 마차에 싣고 농장에 가서 매상해서 받은 돈으로 세 아이 러닝셔츠 한 개씩 사고 큰맘 먹고 300원 주고 큰 수박 한 통 사서 아이들 주고 저금을 했어요. 매달 남편이 부쳐 주신 돈은 알뜰히 쓰고 저축해서 남편이 전투경찰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남편이 객지에서 수고한 기념으로 밭 279평을 샀어요.

밭을 샀을 때는 남편도 좋아했고 그동안 젖먹이 어린 아기 재워놓고 밭에 가면 아기가 울면 두 꼬마 아이들이 우물가에서 바가지에 찬물 떠서 아기에게 우유 먹이더라는 얘기를 이웃 아줌마한테 듣고 아이들까지 고생시키며 농사지어 번 돈으로 밭을 사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는 친정도 가난해서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시집올 때 혼수를 못 해 와서 집을 장만하기 전에는 이사 올 때 이불 보따리 하나 책상과 쇠고리 하나 그릇과 항아리 몇 개 마차로 반도 안 됐어요. 텔레비전은 1975년 보리 매상하고 마늘 팔아 흑백텔레비전 6만원에 사고 전화는 81년 가입비 3만240원 내고 세탁기는 1978년 여름 홍성에 지진이 나서 홍주성이 무너져 1980년 9월에 홍주성 개보수할 때 일꾼들 밥 해주며 식대 받은 돈 14만원으로 80년도에 샀어요. 냉장고는 1979년 3월 20일 21만5000원 주고 샀어요.

이렇게 살아가면서 한 가지씩 살림을 장만할 때는 가족이 모두 기뻐했어요. 처음 살림 시작할 때는 단칸방에 주방에는 흙 부뚜막에 사과 궤짝 얻어 그릇 몇 개 놓고 살림을 했어요. 가계부 열심히 쓰고 생활일기 쓴 덕분에 198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1994년 여성신문에서 여성문학상을 받았어요. 제가 살아가면서 가장 기뻤던 날은 아홉 번 이사 다니고 집을 사서 이사 오던 날 가장 행복했고 대전일보 사장님의 상패를 받았을 때는 정말로 기뻤어요.

저는 가계부를 쓰면서 1개월에 한 번 월말결산을 하면서 가계부에 빨간 글씨 안 쓰려고 노력을 했어요. 아이들 옷은 장에서 싼 옷을 사서 입히고 아들이 입던 나일론 남색 바지가 색이 바래지면 뒤집어서 딸 아이 바지를 만들어 입혔더니 딸아이가 꼬까라고 좋아서 입고 깡충깡충 뛰면서 ‘엄마 꼬까, 엄마 꼬까’ 하며 좋아해서 어린 딸한테 미안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저는 딸한테 예쁜 옷을 사서 입히고 싶었는데 참았어요.

경찰은 옷이 나와서 남편 입던 바지를 고쳐 입고 아이들도 여름에는 바지 만들어 입히고 겨울에는 실로 바지를 짜서 입혔어요. 밭농사 후에는 마늘을 심어 마늘 1접 팔면 그때 돈 3000원을 받게 되어 밭농사 후에는 떨어진 내복을 기워 입지 않게 생활에 여유도 생기고 목돈이 되었습니다. 보리농사보다 마늘농사가 수입이 더 좋았어요.

저는 저축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가계부 체험담 공모에 응모해서 최우수상도 받고 1981년부터 마을의 부녀회장을 하면서 1가구 1통장을 만들어 저축 운동을 열심히 해서 1986년 대통령상도 받았습니다. 1985년 밭이 방송국 대지로 팔려 그 돈으로 살던 집을 헐고 보태서 한 평에 60만원 주고 건평 40평에 이층집을 새로 지었어요.

1994년 12월 27일 남편이 정년퇴임하고 1995년 1월 청솔아파트 신축으로 밭이 팔려 그 돈으로 홍동에 산을 사서 함께 다니며 밭에 들깨·참깨·고구마·콩 등 여러 가지 작물을 가꾸며 농사지을 때는 행복했어요. 남편이 돌아가시고 연금이 줄었어도 손자들 대학교 들어갈 때 주려고 예금하고 이웃돕기 통장도 매월 7만원씩 저축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시아버님께서 잘해 주셨는데 아버님께 효도 못 해 드려 평생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아버님께서 1969년 60세에 돌아가셨는데 54년 전 저의 집은 너무 가난하고 돈이 없었어요. 1968년 남편의 봉급 1만4750원 탈 때 3640원 적금 치루면 세 식구 간신히 살았어요. 적금을 타면 아버님께 효도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는데 아버님께서는 적금을 타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저희는 1981년 남편이 직장에서 재형저축을 타고 농협에 적금 들어 신곡리에 논을 한 편에 2700원씩 주고 논 여섯마지기 사서 농사지어 경운기 타고 벼 가마니 싣고 올 때는 정말 기뻤어요.

60년 동안 나라도 많이 발전하고 물가도 참 많이 올랐어요. 가계부를 씀으로 절약하게 되고 그 시대에 물가 시세와 가정의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제가 오랜 세월 가계부와 생활 일기를 썼더니 가정에 큰 도움이 되어 가난도 이겨내고 노후를 평안히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주부들이 가계부 꾸준히 쓰면서 살림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권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